글 나부랭이

인생사 가방사

마담파덩 2016. 6. 20. 14:45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Why do women need so many bags?"
그 말을 해서 일행으로부터 빈축을 산, 뭘 모르는 털털한 남자는 이렇게 강변한다. 
"You have one. You put all your junk in it, and that's it. You're done." 
그 말에 공감하냐 안하냐와는 별개로 어쩌다보니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면 사람은 일생동안 몇 개의 가방을 가지게 될까. 
분명한건, 위의 남자의 말처럼 달랑 한 개가지고는 안된다는 것. 
인간의 생애 첫 가방은 바로 초등학교 입학할 때 갖게 되는 책가방이 아닐까. 요즘에야 초등 입학전에 이미 유치원이나 학원 가방을 들게 된다지만. 이것은 가방들중 가장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주인으로 하여금 잠잘 때도 꼭 끼고 잘만큼 흥분하게 만든다. 눈뜨자마자 내복위에 납작한 빈가방 덜렁덜렁 흔들리며 매고 나오게 만드는 책가방. 여아들의 경우 분홍색이 대세고 남아들의 경우 파랑색이 대세인데 반드시 당시 유행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게 보통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캐릭터 책가방은 본인이 유치해서 견딜 수 없어질 무렵부터 시작하여 성장과 더불어 개인의 사정과 취향에 따라 몇 차례의 개비를 하기 마련이다.     

성인이 된 후 남자들은 소위 007가방으로 불리우는 서류가방이나 컴퓨터 가방 등을 들게되고 여자들은 이제야말로 위의 '패션젬병남'식으로 필요물품을 쓸어담는 용도가 아니라 identity를 표현하는 용도로서의 가방을 들게 된다. '아줌마들이 드는 건 가방이라고 하는거 아니야. '빽'이라고 하는거야' 라는 딸래미의 말처럼 여자들의 경우 다양한 기능뿐 아니라 '빽'의 브랜드는 꽤나 중요해 보인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취향이나 안목을 표현해줄 도구로. 

생애 첫 캐릭터 가방만큼 설레는 가방은 바로, 여행가방이 아닐까. 꼭 필요한것만 선별해 잘 담는다 해도 결코 가볍고 단순하게 잘 안싸지는 여행길 가방은 아무리 무거워도 마음따라 가볍게 느껴지게 만드는 즐거운 가방이다. 

그런가하면 쓸쓸한 가방도 있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노인이 되어 혼자힘으로 살림을 꾸려갈 수 없을 때 시설에 들어가거나 할 때 싸는 가방. 꺼내놓았던 짐을 다시 가방에 담아 익숙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의문인 심정으로 바라보는 가방은 덩그마니 놓인채 공연히 묵직하다. 

일생중 이 가방을 갖는 사람도 있고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는 가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소위 '이민가방'. 이민을 가는 사람이 전체를 놓고 보면 뭐 얼마나 된다고 오래전부터 이민가방이란 이름의 가방이 따로 있었을까 싶은데... 다른 가방들과 달리 이것은 비장미(?)가 두드러진다. 불확실성을 안고 어쨌거나 비벼대온 언덕을 떠나 미지의 먼 곳으로 날아가는데 있어 취향따위를 따질 계제가 아닌게다. 대개 살림살이를 배에 부치고 짐이 도착할 때까지 한 두달 지내는동안 없어서는 안될 살림살이만으로 채우는 이민가방만큼 그냥 그 기능이면 족한 가방이 또 있을까 싶다. 탑승자 한 사람당 23kg 미만 두 개의 가방에 최대한 효율적인 짐싸기만이 요구될뿐. 캐나다 공항에 막 도착하여 이 철저히 낯선 곳에서 우리 가족의 생존이 달린양 그 몰개성의 시커먼 이민가방을 기다리는 긴장된 심정, 그게 바로 이민자의 초심이 아닐런지. 

그런데 뗏목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 했거늘 왜 난 그 촌스럽디 촌스러운 이민가방을 아직도 갖고 있는것인지. 혹시 내 잠재된 의식 어느 구석엔 나도 모르게 사람 일 모르는 거라고 여기고 있는걸까. 지금은 먼지 앉아 처치 곤란이 되어가고 있는 이 뗏목을 '리마인드 초심'용으로 갖고 있을 것인가 미련없이 버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