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앓이, 그리고...
이게 얼마만인가.
깊어가는 가을, 상투적인 '독서의 계절'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간만에 독서삼매에 빠져있는 나날이었다.
읽는동안 어느날은 밤도 새워가며. 10년 전쯤 만화 <궁>을 읽으며 밤새웠던 이후 아마 처음이지 싶다.
제인 에어.
1800년대에 씌여진 작품을 2000년대에 살고있는 독자가 읽으며 감동을 느끼다니. 그래서 클래식인가보다. 어렸을때 어린이 세계명작 전집같은데서 접했기에 왠지 동화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동안 읽고싶은 생각조차 없이, 제목만 너무나 익히 알고있는 걍 옛날 이야기쯤으로 내 기억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제인에어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사연은 부끄럽게도 좀 몰문학적이다.
캐나다는 왜그리 책값이 비싼지. 한국보다 대체로 종이질도 안좋고 책의 디자인이랄것이 그다지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한국의 출판물에 비해- 않은데 참 비싸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느날 서점을 둘러보다가 골라골라 세 권에 10달러 하는 특가세일이랄까 땡처리랄까 뭐 그런 기회가 있어 정말 싼맛에 들고온게 그 동기다.
처음엔 어려운 어휘가 많아 과연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안읽고 꽂아만 두게 된다면 순전히 싼맛에 갖게 됐지만 그마저도 본전생각에 계속 붙들고 있었다. 참 놀랍지 않은가.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이 아줌마 정신!
두번 밤새고 두번 울다.
이름하여 제인앓이.
19세기란 시대가 정확히 어떤 배경을 갖는지 상세하게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 같은 페미니즘이 용인되는 시대는 분명 아니었을텐데, 그는 '여성이기 전에 인간'을 주장한다.
Women are supposed to be very calm generally : but women feel just as men feel;
they need exercise for their faculties, and a field for their efforts as much as their brothers do;
they suffer from too rigid a restraint, too absolute a stagnation, precisely as men would suffer ;
and it is narrow-minded in their more privileged fellow -creatures to say that they ought to confine themselves to making puddings and knitting stockings, to playing on the piano and embroidering bags. It is thoughtless to condemn them, or laugh at them, if they seek to do more or learn more than custom has pronounced necessary for their sex.
고아로 자란 제인은 너무나도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이며 건강한 자아를 가진 진정 성숙한 여성으로 결코 신데렐라를 꿈꾸지 않는다.
I am no bird, and no net ensnares me. I am a free human being with an independent will.
I care for myself.
The more solitary, the more friendless, the more unsustained I am,
the more I will respect myself.
제인은 가난하고 미모가 없는데다 부모배경 없는 여성으로서 자신이 남몰래 품은 연정도 거침없이 소리칠 수 있는 여성이다.
Do you think, because I am poor, obscure, plain, and little, I am soulless and heartless? You think wrong! I have as much soul as you and full as much heart!
... and we stood at God's feet, equal-as we are!
그런가하면 사랑을 떠나와 찢어지는 가슴의 상처를 안고 맨몸으로 비탄에 빠져 빵과 거처를 구할때 자신을 거지취급했던 사람에게 훗날 준엄한 충고를 할 줄도 안다.
Some of the best people that ever lived have been as destitute as I am; and if you are a Christian, you ought not to consider poverty a crime.
이렇게 푹 빠지다보니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다. 세상에나, 제인에어를 영화한 작품으로 그렇게나 많은 버전이 존재하는지 몰랐네.
20년 전쯤 제작된 영화를 한편 보고도 이 제인앓이가 가라앉지 않아 이번엔 한편의 영화가 아닌 TV에서 시리즈물로 제작된 제인에어를 만난 나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앓이로 옮겨갔음을 고백한다.
토비앓이. ( 주의.텔레토비 아님)
여러 버전의 여러 로체스터들중 으뜸! 바로 이 남정네, Toby Stephens.
(꺄아~~~~~~~~악!!!)
master, oh my master...
흙속에 진주라 했던가.
우선, 수많은 책더미속에 우연히 건져온 보통의 책 한권이 결국 내겐 첫 '흙속에 진주'였고,
450페이지에 달하는 빼곡한 글자속에 마음에 다가오는 명문장들 또한 값진 '흙속에 진주'였으며,
샛길로 빠져서이지만 이 매력남 토비가 내겐 단연 빛나는 흙속에 진주로다. 하하하
이 가을, 그들덕분에 나의 감성지수가 한껏 높아졌지만 이제는 헤어져야만 하겠다. 설거지 쌓아놓고 지금 이 야심한 시각에 제인을 곱씹고 토비를 감상하고 있는 나는 사실 할일많은 아줌마이니깐.
Farewell, my lovely cou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