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덕후 잡설
나는 셜록덕후다. 이런 이들은 아마 나말고도 전지구적으로 엄청 많을줄 안다.
BBC에서 해주는 셜록홈즈 드라마에도 열광하지만 나는 원작도 사랑한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을 상상해서 읽게 되지만.
미드를 별로 많이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렇게나 도도한 TV시리즈가 또 있을까. 몇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시즌에다 단 세편정도씩의
에피소드를 찔끔찔끔 '하사'해주셔도 감히 불평을 하랴, 오직 은혜롭게 시청할 뿐이다.
대망의 2017년이 시작되는 날, 셜록은 몇 년만에 시즌4로 돌아와 주었다. 지난 연말에는 새시즌 셜록맞이를 앞두고 지난 시즌 에피소드를 경건한 마음으로 총복습 하기도 했다.
시즌4에서 부쩍 느껴지는 건, 셜록의 이제까지의 주장처럼 'not a psychopath, high functioning sociopath'를 넘어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점. 그의 감정적인 고뇌도 보여진다는 점이 아닐까. 제작 년도만큼 원숙해진? 혹은 조금은 늙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외면만큼이나 셜록의 성장? 이라 봐도 좋을런지. 또한 시즌 4에서 마틴 프리먼의 연기가 더욱 돋보인다고 느꼈다. 극중 존 왓슨 부부의 비중이 이전 에피소드에 비해 많은 것과 비례해서.
시즌4의 마지막 에피소드 'the final problem'은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는데 '딱 하루 딱 한번' '스페샬'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은 덕후의 기본이지. 극장안에서 빵빵한 오디오로 셜록의 시그널을 듣는다는 건 함께한 우리집 미성년 셜록덕후 동지들 말마따나 '왕소름'이며 '캐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 무자막 영화감상은 넘사벽인데다 손에 쥔 모래 빠져나가듯 디테일은 거의 놓쳐 추후 보충 심화 학습이 반드시 요구되지만 뭐 그런대로 문화적인 포만감이 상당했지.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안에 불이 들어올 때 관객들을 슬쩍 둘러보는데 같은 것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글로발 동지애 및 찐한 연대감마저 느껴졌다. 그 '딱 한번'의 기회를 찾아 추운 평일 저녁 기를 쓰고 나온 그들도 참 어지간한 사람들이 아닌가.
셜록 시즌4와 함께 눈길을 끈 또하나의 소식. 극중에서도 부부로 나왔고 실제로도 커플이었던 마틴 프리먼과 아만다 애빙턴의 결별소식이다. 그들은 두 아이를 두고 16년동안 함께 살았다고.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많은 유명인들이 이혼이나 결별을 한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헤어진 후 2주뒤에 촬영이 시작되었다는 부분. 따라서 '셜록 시즌 4'와 그들의 '결별'소식은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덕후는 마땅히 출연 배우에게도 애정을 갖기 마련인지라 기사를 찾아 읽었다.
"Martin and I remain best friends and love each other, and it was entirely amicable." she said.
음...이들도 아름다운 이별을 말하는군. '서로를 응원하는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어요'. '좋은 동료 또는 선후배로 남기로 했어요'..그간 많이 보아온 내용처럼.
아름다운 이별, 그게 실제로 가능하기는 한걸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가 가능할 수 있을까. 암튼.
"There was no hostility, really, we just said that we couldn't live together anymore. So we put everything in place, he moved out to a flat
in north London, I stayed at home and we've started a new chapter....~~
and we both came to the decision that splitting was best for us...~~"
근데 끝까지 읽어봐도 뭔가가 빠졌다. 한국의 연예인의 결별기사에서 흔히 보던 것이 없다! 지못미, 아니 좋못미가 없네.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 거기다가 배우의 사생활과 작품의 시기가 겹치면 해당 배우의 '돌연 잠적' 또는 '연락 두절', 그리고 소속사 해명, 이어 '불가피한 하차'의 제작사 발표가 수순 아니던가. 거기에 안타깝다는 팬들의 반응까지 온통 시끌벅적.
해외의 연예인들은 쿨하며 우리는 안쿨해서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커플의 결별, 그냥 인간사의 하나이며 아주 희귀한 일도 아닌데 드러나보이는 사람들이래서 꼭 뭐 '본보기' 이런거여야 할 이유는 없겠다가 뽀인트 되겠다.
아, 나의 셜록은, 갔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버렸다. 달랑 세 편만 떨구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진 않으리, 그리울땐 다만 충실한 무한복습만이 있을뿐. 새록새록 새 맛을 음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