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커뮤니티
마담파덩
2017. 3. 21. 01:09
Community. 캐나다에 살면서 여기저기서 참 많이 접하는 말이다.
사회학적 용어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말이 참 낯설고 확 다가오지 않았다. 커뮤니티란 얼른 쉽게 말해 '울동네'를 말하는 것인가?
행정적으로 구분해 놓은 일정의 물리적 공간 범주의 의미인지 대충 나의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한 얼마간의 범위로 설정된 추상적인 개념인지. 이 말을 한국어로는 흔히 '지역사회' 또는 '공동체'라고까지 옮기는 것을 보았다.
한국의 경우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 단지가 커뮤니티인가. 무슨무슨 동까지인가, 혹은 구인가 시인가, 아니면 애들 학교 보내고 모닝커피와 함께 수다를 나누는 엄마들 모임인가, 집에서 가까운 ymca같은 곳의 운동이나 취미 강좌 클래스까지인가. 대도시가 아니라면 옛시절 마을 이장님이 전화받으라고 마이크에 대고 온동네 울려퍼지도록 소리치는 사람까지가 커뮤니티의 범주인가.
그것의 명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뚜렷하지 않은데, 캐나다에서 얼마간 살고 있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이 '커뮤니티 마인드'가 부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거다. 나름대로 촌스럽게 정의한 커뮤니티란, 그냥 그안에서 왠만한 삶의 갖가지 꺼리들이 해결되는 바운더리쯤? 먹을거리를 사는 일에서부터 병원이나 각종 문화생활, 기타 심지어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까지도. 더불어 기부를 하거나 봉사활동의 사회적인 활동까지 행해지는 바운더리.
한국에서 '커뮤니티'의 실체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반상회?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놈의) 반상회가 참 껄끄러웠다. 한국을 떠나면서 메롱~하고 싶었던게 있었다면 바로 그(놈의) 반상회였으니까. 이사를 가서 다른 지역으로 가도 반상회의 행태는 매우 유사성을 띄는것 같다. 이사를 딱 가면 얼마있어 누군가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하게돼있는 반상회의 장소제공자로 지목되었음을 통보받는다. 야쿠르트를 내놓으며 마치 새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신고식을 겸한 통과의례같은 것. 반상회를 불참하면 또 벌금을 낸다. 어느날 벌금 독촉을 받다가 의문이 들었다. '벌금'이라니, 반상회 안가는게 죄가 되나. 반상회 참석이 각 세대의 의무사항이라면 주민에게 그런 의무사항을 부여한 권력의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살고있던 '겁나 똘똘한' 아파트를 지은 L건설사인가 아니면 관할 행정기관인 동사무소인가. 상급기관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상회를 하도록 한것은 그럼 국가인가?! 태생은 독재시절 국민 통제수단이었단 생각에 미치자 반상회 안가고 벌금 안내고 반상회 주최하는 장소제공 계속 안하기로 나혼자 결론을 내렸다. 혼자 잘난척 유별을 떤다는 빈축도 사며. 아, 내가 캐나다에 오지않았으면 '반상회 철폐 범국민 운동본부'를 조직했을텐데... 하하.
혹시나 이런 관점 및 태도가 '커뮤니티 마인드'에 반하는 거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커뮤니티 마인드에 반하는 풍토는 무엇일까. 내 취향이나 내 quality of life의 수준은 결코 동네 수준에서 충족될 수 없는 상위레벨의 것이야...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기 때문에 본인들은 결코 동네수준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강변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동네 미장원에서라면 구리다고 여겨 강남 유명 체인점에 가셔야 하고 아이는 대치동 학원에 보내야 하고 아플때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대병원 정도는 가야 병은 안나아도 새로이 속병은 안생길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는 반드시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과시해야 하는 사람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처럼 우리 민족에게는 유난히 서울집중 현상이 있어왔긴 했다. 아주 예전에 일때문에 지방을 가게되면 그곳 사람들은 서울을 -본사나 본점- '중앙'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타도시의 하나가 아닌 '중앙'이라니. 최근엔 '중앙'에서 더 압축된 대한민국 비공식 representative '강남'의 위상은 좀 과도한 느낌이다. 한참 '오빤 강남 스타일'이 유행할무렵 캐나다에 온 내 아이가 학교에 간 첫날 질문받았다던 "Are you from 강남?" 처럼 앞으로 어떤 이들은 저들 스스로 "I'm from 강남" 이나 "Gangnamian"이란 신조어로서 자신을 차별화시켜 규정하고 싶어하는 괴물들이 나오지나 않을지 우려될만큼.
어느 신문 칼럼에서 본, 한국인이 동경하는 지향점을 모두 종합해 한마디로 압축하면 '신체나이 20대인 서울대 출신 강남 건물주'라는 대목에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완벽하게 괘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너무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서... 모두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상의 한 지향점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나가는 마음가짐이 현재 대한민국의 높은 경제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이유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특정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만이 자신과 동일시하며 만족을 느끼며 사는 꼴이 된다. 그안에 있는 사람들은 행여 '개나소나' 편입해 들어와 '수질'을 떨어뜨릴까 꺼려해서 그들만의 리그로써 배타적인 행복을 과시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커뮤니티안에 들어가고 말리라는 목표아래 헐떡이는 삶...
한편 우리의 지향은 서울로, 강남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더 멀리멀리 향하기도 한다. 내가 살았던 시의 캐치프레이즈는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고장 oo' 이였다. 커다랗게 씌여진 현수막을 지날때 꼬맹이가 묻곤 했다. 엄마, 우리고장을 어디다 다 실코가아??? 왜 굳이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는건지, 무엇보다 하나의 지역이 세계로 뻗어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특산품 따위를 마구 수출한다는 이야기인가 관광자원을 마구 계발해 세계인들을 유치하고 지명도를 높인다는 것인가.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면서 가끔 그 공허한 구호를 떠올리다가 어느날 깨달았다. 그 지역민이 캐나다로, 호주로, 세계 곳곳으로 이민가는 것이라는 걸. 하하.
캐나다에 오니 패밀리 닥터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 환자를 받는다는데를 찾기 쉽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면서 몇 년이 흐른 어느날, '귀하는 귀하나 날로 낡아져가는 몸을 가진 여성이기에 자궁암 검사를 때때마다 받아야 하는 때가 당도하였노라'고 하는 편지를 받았다. 아울러 만일 패밀리 닥터가 없다면 우덜이 찾아봐서 귀하가 조속한 시일내에 자궁암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해주어도 누가 되지 않겠느냐고도 물어봤다. 윤허를 한후 얼마가 지난 어느날, 환자를 받을 여력이 되는 의사를 물색해 또 편지를 보내왔다.
"Thank you for allowing us to assist you in finding a family health care provider."라고 덧붙여서...
저 멀리 저명한 무언가를 찾아댈 것없이 내가 살고있는 주변안에서(within community?), 늙어가는 나의 소중한 자궁은 소박하고 멀쩡하게 잘 살펴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community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