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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 꽂힌 시 한편

마담파덩 2017. 6. 17. 00:51


요즘 시가 좋고 철학이 땡기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가 현재 내가 처해진 삶의 조건들 때문인가. 

어쨌든 강신주 강의를 '또' 듣다가 맘에 드는 시 한편을 접했다. 

사실 난 시를 그닥 잘 읽지 못하는데다 -안 읽는게 아니고- 즐기지 못하는 사람인데다 시를 씁네 하면서도 사실은 그 내면에 도사린 허위의식을 봐버린 사람을 둘이나 알고 있어서 시가 내게는 멀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는 참 다가오는고나. 


김광규 시인의 나.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