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젓가락질 못하는 남자

마담파덩 2025. 2. 23. 23:39

내게는 고약하고도 쓸모없는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 하나 있다. 젓가락질 못하는 남자가 싫다고 하는. 아니 다시 말하자. 젓가락질을 자연스럽게 해야 마땅함에도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아 이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젓가락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는데 못하는 남자, 아 그게 맞긴 하겠으나 더 쉽게 가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국남자인데 젓가락질 못하면? 실격이라 이거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편견이고 고집이다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처럼 젓가락질이 안돼서 좀 열등감이 있었다. 정작 부모님은 그걸 보고 야단치지도 않으셨는데 혼자 괜히 그랬다. 그게 어른같은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내 머리속엔 내가 하는 방식 젓가락 두 개가 벌어지지 않고 딱 붙은채 밑에만 벌려서 음식을 집느라 X가 되기 일쑤인 내 젓가락질이 너무 창피했다. 그건 유아의 젓가락질이라고 느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자가훈련에 들어갔다. 나무젓가락, 즉 각이 있는 걸로 연습하면 좀 됐다. 그러다가 어느날 짠 하고 성인의 젓가락질에 성공했다.  

 

그 뻐김의 느낌이 강해서 남자에게도 괜히 억지부리듯 혼자만의 아무 쓸데없는 기준을 세운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젓가락질이 편해서 집에서 스파게티를 해먹기라도 하면 젓가락으로 먹는 사람이다. 포크는 좀 둔하지 않나. 젓가락은 얼마나 정교하냐 말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나는 한국영화는 무지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기를 쓰고 보는 편이지만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죽 훑어보는 일은 더러 한다. 요즘은 어떤 것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나. 뭐 가만 있어도 자연히 알게될 정도로 여기저기 기사로 많이 튀어나오는 드라마들은 제목만큼은 꿰고있다. 아이쇼핑하듯 하다가 한 사극에 눈길이 가서 클릭해보았다. 시식하듯이. 

 

요즘 하도 퓨전 사극이라 해서 현대극이랑 다를게 없는데 의상과 머리모양만 사극인 것들이 많아서 이것도 그런건가 하고 살짝 맛본뒤 혼자 욕을 바가지로 해주려고 재생을 시작했다. 어라, 근데 그런 가벼운 퓨전이 아닌 것 같았다. 여자 배우나 남자 배우나 묵직한 발성에 사극 특유의 중후함이 매력있었다. 화면 왼쪽 상단에 '원경'이라 씌어 있었다. 그게 누군지 몰랐으나 네이버로 가서 살짝 족보를 참조하니 태조 이성계, 이방원 나오는 조선초기 무렵인 것 같았다. 

 

띄엄띄엄 보면서 괜찮으면 이러다가 정주행 하게 되는 수가 있지 하던 찰나, 못볼걸 보고 말았다. 

짐작컨대 임금인 아버지가 후계자로 점찍은 아들을 단디 교육시키기 위해 백성들이 먹는 식사라며 반찬 두 개 놓인 상앞에 마주앉아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보니 세자는 수염도 있는 성인이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음식을 씹고 아들은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유약한지 아닌지 알기도 전에 내게 딱 걸린 이것은! 

 

바로 젓가락질. 내가 유아시절 하던 방식 그대로 교차된 젓가락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노릇을 어쩜 좋으냐. 젊은 세자에게 푹 빠질 틈도 없었지만 돌연 홀딱 깨는 느낌이었다. 옛날에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으면 '깨작깨작' 거린다며 꾸중 대상이 아니었던가. 그럼 젓가락질을 정석대로 안하는 것은 그런 대상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더우기 왕가의 법도에서라면? 그냥 배우의 실수인지 그 옥의 티를 못잡아낸 제작진의 불찰인지, 모두 아니라면 그냥 내 고약한 기호탓이렷다. 

 

쓸데없고 아무 타당성 없는 그저 나만의 취향이라는 건 앞에서 충분히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어쩌라고. 설령 금젓가락을 들었대도 젓가락질 제대로 못하면 그 즉시 남자로 안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