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모드
이번주부터 우울한 조짐이 나타나더니 오늘은 심신이 모두 지쳐 나가떨어지게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다.
모두가 흥청망청한듯 보이고 즐거운듯 보이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모임도 없고 썰렁해서 그런가?
한국에 있을떄 연말 모임이 뭐그리 있었나? 그건 아니지.
어제 젠의 secret santa행사인지 뭐인지에 들려보낼 선물 산다고 mall에 갔는데 아주 그냥 물오른 쇼핑시즌 그 자체이던걸.
왠지 소외계층이 평상시가 아닌 특별한 때에 소외감을 더 느낀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더군.
원래 나는 쇼핑을 하면 엔돌핀 상승하는 성향의 사람이던가? 그것도 아니니 패쓰.
그래도 꼬맹이들 사이에 작은 선물 주고받기의 문화속에서 아이로 하여금 허접하고 구린거 내밀면서 수치심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아서
나름대로 신경써줬다. 카드도 사고 하늘색 쇼핑백을 따로 사고 밋밋한거 같아 거기다 빨간 리본 만들어 붙여서.
일하러 가기전 그거하느라 얼마나 분주했고만. 저녁에 녀석이 받아들고온 선물은 성의없음이 상징인 맨 초코렛 딸랑.
해주느라 소소하게 즐거웠고 받는 이도 정성껏 준비한 선물에 기뻤으면 그걸로 됐고.
이번주 초부터 나의 힘겹게 안간힘을 쓰며 해온 이 엄마노릇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것 같다.
목요일, 카뎃에서 가진 크리스마스 식사모임에 10시에 끝나면 데리러 가기로 하고 일끝나자마자 갔더니 이미 아빠에게 전화해서
집에 가버려 일하던 복장입고 파티한다고 차려입은 사람들 틈에 아들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 마치 생선 팔다 갈데가 아닌 곳에
얼쩡거린 듯한 그 기분은 엄마니까 겪는 일이다. 왜? 반드시 지 새끼 찾아 집에 데리고 가야하니까.
한 주동안 샘에게 숙제했느냐고 몇차례 물었다. 녀석은 했다고 답했고 나는 믿었지. 메일함에 선생님으로부터 온 메일.
두주동안 숙제를 제출안하고 있으니 수업후 만나자는...
녀석의 거짓말. 엄마는 자꾸 길게 야단치기에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해괴망칙한 변명.
아빠에게 말을 하면 거의 집안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테니 자식 훈육은 나혼자만의 몫이 될 수밖에. 요즘 한국에선 이런 상황을
독박육아라 한다지? 유행어랍시고 이상한 조어가 마땅찮은 내게도 참 적절한 표현같다. 독박육아. 그거 딱 내 얘기.
이 녀석을 어찌한담. 이래서 사춘기 사춘기 하는건가. 문제가 반복될때 어떻게 대응하는게 현명할것인가.
내버려두는거? 밀착 관리? 철저하게 댓가를 치름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후 스스로 개선을 결심하게 하기?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나겠다고 했더니 왜 그건 안된다고 징징거리는지. 엄마의 간섭을 받기는 싫고 그렇다고 엄마의 무관심속에
내쳐지기는 싫은 심보. 어쩌라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심난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렸다. 젠의 클럽에서 하는 페스티벌이 있는 날.
작년엔 참여를 안해서 뭘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가 온라인으로 신청을 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아침에 가서보니 젠의 이름이
없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등록이 안돼 있단것. 어찌저찌 팀에 이름을 넣어줬는데 정작 녀석은 기분이 상해버려 하기 싫단거다.
왜 자기는 뭐가 자꾸 문제가 돼 다른 애들처럼 제때 하지 않고 뭔가 특별하게 끼워넣어지는 식이어야 하냐고.
처음하는 일엔 시행작오가 있을 수 있고 한번 겪으면 알게되는거라고 그런 아이들 너뿐 아니라고 설득해도 죽어도 하기 싫다는데야.
다들 자기를 끼워주기 싫어하는 표정이었고 그렇게 말도 했다나.
다시 집에 오면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열. 이번 주 초부터 일련의 에피소드들로부터 누적된 스트레스가 큰 폭발력을 발휘하는 순간.
차안에서 언성을 높이며 훈계를 하다가 목이 갈라지고 메이고...
시행착오쯤 겪으면 어때.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것도 다행이지. 그건 내 생각이고 녀석의 생각은 다르니...
내겐 뭔가를 하게 해주고 돌봐주고 처리해주는 그런 엄마가 없었는데... 늘 혼자 서야 했는데. 세상에 늘 자신없는 엄마는
어린 나를 등뒤에 서서 밀어내며 너 혼자 알아서 해보라는게 엄마식 자립심있게 아이 키우기 육아법이었는데... 그래서 등뒤에서 바라봐
주는 엄마의 시선이 없는 나는 모든 일에 얼마나 막막하고 자신없고 불안했는데... 이상한건 그럴때 어린 내가 느낀 건 두려움보다 내 존재자체의 부끄러움이었다.
아름답거나 우아한 자태가 아니어도 엄마 특유의 별로 거칠것없는 태도로 '괜찮아 그거 큰 문제 아니야' 같은 투박한 코멘트나 그냥 그 자리에 우직하게 있어주는 엄마의 존재감이 얼마나 아쉬웠는데 얘는 그걸 모르네. 시행착오쯤 있어도 결국 해결됐으면 된걸 모르고 그런 식으론 하고 싶지 않아하다니.
그런 상황에서 왜 어린 나가 떠오르는지 스스로도 당혹스럽다. 자기연민이 시작된건가?
내가 가지지 못했어서 나는 강한 엄마가 나의 모델이다. 법륜스님이 말하는, '태산같은 안정감을 주는 엄마'.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그렇게 키워봐야 애들 바보만드는 과보호일뿐이라는 비난이나 하지만.
내 엄마 노릇자체가 시행착오인건가. 아니면 지혜의 부족인건가. 이럴때 힘들다고 내 엄마에게 하소연하면 틀림없이 비난이나 받으리라.
그래 내가 봐도 넌 너무 애들을 떠받들어 키우더라...
외롭구나. 연말에 송년회니 뭐니 여기저기 얼굴 내밀곳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다.
참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