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31일, 영어굴욕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반공이념을 세뇌당하던 어린 시절 이런 노래도 불렀었지요 .
그런데 저는 2014년 12월31일 이날을 잊을 수 없을것 같습니다.
영어로 인한 굴욕감을 아주 진하게 맛본 날이라서요.
최근 Immunization record와 TB test 결과를 제출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어릴때 맞았던 예방접종 기록이
없으니 혈액검사를 통해 증빙하고 맞을것은 맞고 해서 결국 의사의 소견과 사인이 들어간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미비한 사항이 있다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내용조차 잘 모르겠더라구요. MMR이라고 들어는 봤지만 Mumps 가 뭔지
Rubbela, Measles가 뭔지 그중에 뭐는 positive고 뭐는 negative이니 어떻게 해야한다던지 하는 내용을 잘 모르죠.
그냥 의사에게 맡기고 피뽑고 x-ray 찍으라면 찍고 주사 맞으라면 맞고 적어주면 내는 걸로 끝이었으니 미비된게 뭐고 뭘 요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일단 병원을 갔습니다. 의사는 과정을 아니까 피드백 받은것을 보여주면 척 하면 알겠지 하면서요.
마침 딸아이가 턱에 물집같은게 나서 함께 가게 되었고 접수를 같이 했기 때문에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몇번 봐오던 그분을요.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른 의사였습니다.
그러더니 처음부터 시작하듯 약에 알러지 있는거 있냐 수술한적 있냐 등등을 물어보더군요. 오늘은 뭣때문에 왔냐는데 순간 요즘말로 멘붕 상태가 된겁니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상황을 설명하려 버벅 대는데 의사는 딱 알겠다는듯이 피검사 의뢰서를 쓰더군요. 아무래도 그건 아닌것 같길래 -전의 의사가 다 됐다했고 피검사 결과지를 제게 주었었던 것을 제가 실수로 제출안한게 생각나서 저는 그 결과지를 다시 얻어 제출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러나...이런 걸 차근차근 말로 전하는 일이 제겐 차암 벅찬 일이었던 겁니다. 그렇잖아도 버벅대는데 제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잘 안되더군요. 그러던중 의사가 딸아이에게 Can you speak English? 하고 묻습니다. 전 속으로 엄마가 이정도니 얘는 어떨까 제 상태를 스스로 설명이나 할 수 있을까 해서 묻는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하는 얘기를 네 엄마에게 설명해 줘라''는 것이었답니다.
순간 얼굴에 피가 확 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어른보다 빨리 영어에 익숙해진 아이를 앞세워 통역을 시키며 이런저런 일보러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오늘 저는 영낙없이 그런 찌질한 엄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어로 인한 오늘의 이 굴욕감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벌개진 얼굴로 돌아오는 길에 위로한답시고 한 딸아이의 말은 저를 두번 죽입니다.
엄마 영어 못하지 않아. 스피킹이 좀 그래서 그렇지 단어는 많이 알잖아...
스피킹이 좀 그래서 그렇지? 아.. 스피킹이 좀 그래서 그렇지 스피킹이 좀 그래서 그렇지...
딸아, 사실은 스피킹만 좀 그런게 아니란다. 리스닝도 좀 그렇고 리딩도 알고보면 나을게 없고 라이팅은 더 좀 그렇단다...
굴욕감 탈피, 내년도 저의 원대하고도 절박한 새해 소망입니다.
Give me fluent English, or give me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