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불자동차는 아름답다

마담파덩 2025. 3. 31. 20:53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안에는 '불자동차'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있다. 어릴 때 장래희망란에 '소방수'라 적었었다는 작가는 이 글에 소방차에 남다른 신념과 관심, 그리고 염원을 풀어놓았다. 평소에는 소방관 또는 소방차, 그들의 일에 큰 관심을 둔 적 없었다가 이 글을 읽고 적잖이 감동받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최근, 영화 '소방관'을 봤다. 재난을 다루거나 소방관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소방관의 직업인으로서의 고뇌와 고충이 잘 담겨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던중 내가 감정적으로 발끈하며 유달리 몰입했던 부분은 바로, 화재가 난 주택까지 진입하는데 골목길 따라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진입에 어려움을 겪어 화재진압이 지연되는 부분이었다.

 

불법주차에 비교적 상당히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 잘못 들인 버릇탓에 이곳 캐나다에서 살던 초기에범칙금을 여러 차례 내고서야 생각자체를 고쳤기 때문이다. 그중 소화전 앞을 가로막는 주차의 경우 범칙금의 액수가 가장 높았다. 몰라서 그랬을 뿐이라는 억울함도 '얄짤'없는 일일뿐. 그 모르는게 문제인 거다. 

 

앞서 말한 김훈 작가의 글에는 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동차가 자동차에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도심 한복판을 사이렌으로 헤치며 나아가는 소방차의 대열은 아름답고 고귀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들이 고군분투하기 이전에, 소방차나 구급차, 경찰차 등 위급한 처지에 있는 인간을 구하러 가는 상황에서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이나 도로의 차량에 막혀서 지연되는 일이 최대한 없도록 구성원들의 자세가 기본적으로 돼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캐나다에 살던 초기 시절에 더러 겪던 일이다. 한번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중이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미처 못들었다가 백미러를 보고 구급차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비킬 생각을 하지 않고 도로가 전체적으로 널럴하니 차선을 변경하겠지 하며 가만히 내 갈길 갔다. 그게 잘못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번은 내가 주행중이던 차선 옆 차선 저 뒤에서 구급차가 썡하고 달려왔다. 나는 생각했다. 옆 차선이니까 나와는 상관없지 않나 하고. 내 가던 길을 가고 있는데 좀 이상했다. 그 차선은 물론이고 내가 있던 차선 앞 뒤에 있던 차량들 모두 옆으로 비켜 인도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만 있었다. 나만 도로 가운데 동동 떠있는 형국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부 몰지각한 운전자가 되어. 

 

또 한번은 반대 차선에서 소방차가 나타났다. 사이렌 소리도 엄청 커서 소리도 들었고 보기도 봤지만 나는 또 생각했다. 반대편으로 가는 거지 않은가. 이건 확실히 상관없지 않을까. 그런데 이번에도 아니었다. 반대편이라도 그들이 일단 떴다 하면 그냥 옆으로 비켜 '동작그만'인게 맞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스쿨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동작그만! 저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이 내리고 있어 스탑사인이 펼쳐져 있는 동안 근방 네 방향에 있는 차량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 기사가 경적을 울리는데 차체가 공중으로 뛰어오를만큼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찢는다. 이것도 겪어봤다. 부끄럽게도 두 번이었는데 한번은 귀가 찢어질뻔했고 한번은 그냥 아무일 없었는데 나중에 생각하길 운좋게 너그러운 버스기사였나 했더니 이런 경우 조용히 신고당하면 벌금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몇차례 겪는동안 나는 규범이 다를뿐 아니라 엄격한 규범에 스스로 학습이 되어갔지만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마치 내가 무지 못배워 막돼먹은 시민이 된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사실 못배운건 맞다. 난 학교에서도 배운적 없고 운전면허증을 따면서도 배운적 없는 것 같고 사회적으로도 보고 배운 바 없단 말이다. 고로 내 잘못 아니다?! 

 

이젠 나도 마땅히 잘 하고 있다고 여길만큼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불법주차 차량에 막혀 화재진압이 지연되는 부분에 분노를 느끼고, 이국종 전 교수의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닥터헬기에 소음문제로 항의하는 민원인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진다. 또한 구급차를 추월한 운전자에 관한 사소해 보이는 기사같은데에 남다른 관심이 가는 이유다.  

 

요즘 경북지역에 일어난 산불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무슨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김훈작가의 말대로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앞에두게 되는 상황. 작가의 글 '불자동차'의 말미를 빌어와 이번 산불이 큰 피해없이 잘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하고자 한다.   

 

어린아이들이 질주하는 소방차에 열광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 어린아이들처럼 우리사회가 소방대원들의 사명의 고귀함을 인식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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