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에 외면하기 어려울만큼,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릴만큼, 섬처럼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이걸 매워 보려고 지난 봄부터 소쩍새의 심정으로 그렇게 애를 써봤다. 씨를 뿌리고 몸에 좋은, 아니 땅에 좋은 영양제를 투여하고 그래도 꿈쩍도 않아 이미 잔디를 키워놓은 담요같은 것도 사다 덮어봐도 뿌리를 못내리고 누렇게 돼버려 맨땅보다 더 거슬리게 되어 걷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서 시원찮은 잔디위로 낙엽이 뒹굴기에 내심 포기선언, 아니 유예선언을 하고 내년을
기약했었다. 나무도 제 잎을 떨구는 시점에 이제 어쩌랴. 저 숭한 맨땅에 흰 눈이 살포시 덮인다면 교묘하게 '캄푸라치'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차라리 눈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봄부터 공들여 뿌려대던 것이 남아 처치곤란에 처해진 잔디씨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건 일반쓰레기야 yard 쓰레기야 재활용 쓰레기는 아닐테고 음식물은 더더욱. 에이 천덕 꾸러기에 애물단지가 된 잔디씨를 야몰차게 흙에다나 버리자 싶어 맨땅에 아무렇게나 뿌리고 손을 탈탈 털어버리고 홱 돌아서 싹 잊아뿌렀다.
무심히 몇날 며칠을 지냈는지도 모를 어느날, 여전히 무심히 그리고 우연히 본 바로 그 맨 땅에는... 뽀시락하니 야들야들한 새 잔디싹들이 보이는게 아닌가. 오호라~ 아무렇게나 버리는셈으로 던져둔 씨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다니.
늦은 봄부터 시작해서 한여름을 지나는 동안에는 볕의 정도나 수분이 제깐에는 마땅치가 않았던게다. 나름대로 물 주는 일을 일삼아 할 정도로 신경쓰고 자주 들여다보고 식물에도 정서가 있다지 않은가. 해서 차마 흙바닥에 대고 음악까지는 못틀어도 말도 거느라 미친척하고 '왠만하면 이제고마 나오지? 넘 튕기는거 아니야?' 하며 좋은 말로 협박도 해보았지만 허사더니...
오히려 기온 살짝 내려가는 가을이 기온이며 볕, 그리고 잦은 가을비가 살만하다 싶었는지 아님 주인에게 버림받은 생명의 오기로 흙을 뚫고 나왔는지 암튼 고것들은 내게 'surprise~'하며 와주었다. 인연이란 가르침을 들고.
내가 씨를 뿌리는 '인'을 행하고 외부의 조건인 '연'이 받쳐주면 비로소 '과'가 만들어지나니...
아직은 여린 고것들 위에 어느날 많지않지만 첫 눈이 내렸다. 한번도 깍임을 당하기도 전에 눈을 덮고 동면에 들 여린 생명들...내 너희들을 특별히 '금잔디'라 불러주마. 내년 봄에 봄 볕이나 비뿐 아니라 언 땅을 녹이는 흙 스스로의 생명의 기운에 박차고 솟아 나오렴.
신통방통한 잔디에 잠시 안녕을 고하고 눈을 떼고 나니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다. 해가 가거나 오거나 오로지 우리 할 일은 '인'을 만드는 것. 내일 지구가 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 남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인'이라해도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 '연'으로 '사과'가 열릴 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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