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을때부터 보고싶었던 영화 <덕혜옹주>를 드디어 보았다.
내가 소녀시절부터 신문같은데서 가끔 그 존재를 접할 때마다 호기심이 있었고 낙선재 같은데에
이상하게 끌림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마지막 황녀.
시대배경은 물론 가정환경 등 출생부터 슬픔을 안은 듯한, 그보다 불행으로만 점철될 수 있을까 싶은 생애.
무엇하나 의지로 개척하거나 맞설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 무력하기만 한 삶.
상황자체가 주는 격함 때문에 여러번 눈시울을 적셨지만 사실 영화적으로 보면
밋밋하게 그려나간거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쉬웠던건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의 캐릭터.
캐릭터는 시종일관 덕혜옹주의 보디가드로만 존재하다 끝난게 아닌가 싶다.
그 개인의 생각, 감정, 갈등 등은 드러나지 않은정도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엿볼 수조차 없는 채.
작품적으로 의도된 절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요즘 한국상황이 떠올랐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들, 친일족속들에 규정된다는 확신.
거기서부터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 그것은 우리나라 권력계층에 악성종양이라는 것.
일본에 붙어 일본에서 군림하고 살다가 일본이 패망하게 되었는데도 그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는대신 마치 이직하듯
이번에는 호탕하게 back to the '조국'하여 새롭게 기름진 삶을 구가하는 그들.
What a such unfairness!
사실 우리나라 Republic of Korea는 '민주주의'를 말하기 전에 바로 그 부분에 매우 민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들 쓰레기 청산에 사명감을 가지고 집요해져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부적인 올곧은 정체성이 없이 곧장 '우리도 한번 자알 살아보세'와 그에 이어 공허한 '글로발리즘'으로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온 지금, 선뜻 내놓을 수 있는 Korean Value가 궁색한 이유가 아닐런지.
영화속에서, 나라잃은 백성들에게 구심점은 커녕 해방후 들어선 정부에서조차 신경쓰지 않은 존재로 입국금지가 된채 일본에서 어렵게 살고있는 왕족의 거취문제를 덕혜옹주의 수호신 김장한이 발벗고 나선다. 귀국조치를 요청하는 김장한에게 검은 썬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박씨가 묻는다. '근데 덕혜옹주가 누구요?'
그 후 당시 '박의장'이던 박씨는 청와대에 '입성'하고 청원을 받아들여 덕혜옹주를 귀국하게 한다.
주말에 영화를 보다가 살짝 등장한 박씨를 보니 자연스레 그의 딸 '근혜공주'가 연상되고, 주말마다 수많은 인파의 소리에 귀닫고 버티는 그에대해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나)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푸른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익숙한 푸른 집 내 집 뿐이리
내가 여기서 나가면 어딜 가겠어.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여길 놔두고... 설마 이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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