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이민투쟁

마담파덩 2017. 2. 22. 13:47

단지 '뉴커머'정도 갓 벗어났을까. 5년 좀 못되는 시간이란. 

그냥저냥 익숙해진 것들에 기대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이 낯선 거대한 땅 캐나다의 한 점으로 'valuable but small' 의 삶을 꾸려가는 개인이 바로 나다. 개구리 주제도 아니건만 내 올챙이 시절을 싹 잊고있었는데 우연히 짱박혀 있던 박스에서 예전에 쓴 일기장을 찾아냈다. 재미보단 참으로 징헌 삶의 흔적들. 간간히 거기에 적힌 이민을 생각하던 나날들의 번민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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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왜 갑자기 이민을 떠올렸을까. 남편같은 오만에 가까우리만치 자신감에 찬 사람이... 남편의 인생은 지금 어렵다. 앞으로 10년을 한국에서 사는 것과 캐나다에서 사는 것을 놓고 볼 때, 캐나다에서의 10년을 선택하겠노라고. 
막연하게 '잘될거다'를 남발하는 일도 공허하지만 급기야 '이민'에까지 돌파구를 찾았다는 사실에 그의 절박감이 묵직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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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날이 흘렀다. 그동안 이민설명회도 2번 정도 다녀오고 나름대로 관련 공부를 좀 한 상태. 70%는 마음이 간 상황이라고 해야하나. 도전이란 무모할 수 있고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기도 하다. 비교적 홀가분한 것은, 경험자들의 흔한 충고에 등장하는 포기와 미련 사이에 갈등해야 할 '기득권'이란게 내겐 별로 없다! 거기서는 zero setting이고 여기서는 zero아래로 내려가는 상황이랄까. 많이 진도가 나갔다. 환상을 경계하면서 실제적인 준비를 하면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것 같다. 
이젠 이사람 저사람 견해를 참고만 할 뿐 추가 왔다갔다 하게 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 준비가 돼서 결국 신청을 하게 될거다. 나의 준비중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내면의 힘을 가질 것. 나이를 의식하며 살짝 위축된 파트너에게 든든하고 따뜻하며 기댈 수 있는 파트너가 돼주기 위해 힘을 내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음마 지금 내가 봐도 쩜 멋져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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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정말 화살은 활을 떠나 날아간다. 저 멀리 캐나다 땅으로! 과연 1000cap안에 들어가서 무사히 접수가 될런지. 우선은 그게 관건이다. 이제 계획이 아니라 기정사실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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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 사실 달라진게 무엇이지? 단지 일이 잘 안됐을 뿐이다. 세상만사 맘먹은대로 되는 일보다는 안되는 일이 더 많은 법인데, 왜 이리 집착이 되는건지. 괜히 남편을 미워하게 되고 미래에 비관적이게 되며 현재를 부정하게 된다. 남편은 처음부터 말만 꺼내놓고 못미더운 구석을 많이 보였다. 이민에 미온적인 내게 화를 내며 나를 다그쳤다. 이민은 무슨 이민이냐며 집어치우라고 역정내길 세 번. 그러니 이렇게 되지. 근데 오히려 내가 더 낙담하는건 뭔가. 그곳에서 환상적인 삶을 살다가 여기에 쫓겨와서 살게된건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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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 되고있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미련버리기, 집착 놓기, 조급증 놔버리기. 되어가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고. 당분간은 이민 사이트 들어가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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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이민병이 생겼다. 지금 하루하루도 중요하다. 느긋하게 맘을 먹자. 3-4년 기다리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되어가는대로 맡기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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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에 대해서는 준비를 하는 것으로 답답함을 해소하자. 오래 걸리더라도 준비가 되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더 나쁜 상황은 오래 걸렸으면서도 그때까지 막막한 상황을 그대로 놔두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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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코 있던 이민에의 조급증이 불현듯 일어 전화를 해대고.. 도대체 내 상황을 알고싶어서. Ca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생각하자. 삶이란 단지 선택이므로 언제이면 괜찮고 언제이면 곤란한 것은 없다. 원하는 선택을 하고 그에 맞는 준비와 노력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수용하고 책임지는 것, 그거이 인생. 그래도? 궁금해...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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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이민. 처음엔 단념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요행을 바라다가 드디어 결론이 났다. 인생살이에 기적은 없는거고 요행은 없는 것. 만족스러운게 있다면 누가 떠먹여 주지않고 스스로 알아보며 내 불확실 요인을 해소했다는 것. 이민에 대해 남편을 믿을 수 없게 된게 아픔이지만 비난이나 원망은 금물. 이민 못가도 가족은 남는 거니까. 결국 이민이 안되고 남게 되도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덜 괴로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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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다. immigration, 완전히 내 머리속에서 지우자. 정말 죽도록 피로감을 주고 있다. 그런 열정을 다른데 쏟지. 그의 미온적인 태도로 무슨 일이 될건지. 난 열심히 했다. 하려면 밀어부쳐야 할 것 같아 그랬는데 맨날 기다려보자는 말만...기다리니 꽝이지. 잊어버리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 인연에 맡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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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괜찮다가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집착이라니...불발된 총알을 제대로 한번 발사하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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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완전 비웠는데 어찌어찌 일이 잘 되었다. 신청은 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걸 인연에 맡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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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잘 될거다 여겼던 일이 또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 무능한 업체를 선정한 것도 나인데... 제발,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무사히 접수가 된다면 감사하겠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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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했다. 그러고서 내 손을 떠났다. 그 후 이상하게 좀 놓아졌다. 이젠 뭐 어쩔 수 없지. 비로소 진인사대천명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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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획득'이 아닐까. 새로운, 전혀 낯선 곳에서 살도록 자격을 획득하고, 그럴 능력을 획득하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획득하는 기회. 마흔 넘어의 삶에 그런 노력에 의한 획득이 쉽지 않지. '기회의 획득'이라 이름붙인다. 온전한 획득이 되기 위해선 부지런히 쌓아가야 한다.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진 매일매일을 살기. 목빠지게 기다림이 아니라. 그래야 '생존'이 있고 그 다음 '꿈'도 있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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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떠나려 하는가. 또다른 선택이며 새로운 시작. 나자신에게도 엄청난 도전이며 아이들에게는 또한번의 태어남이다. 다시 그 곳의 사람으로 자라야 하니까. 나는 그곳에서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 살려내야 한다. 전혀 새로운 낯선 곳에서 부작용없이 뿌리를 내리도록 지렛대, 거름, 버팀목, 주춧돌이 돼줘야 한다. 그러려면 당당하고 씩씩해야 한다. 
지금 현재는 그 'in process'가 많이 위안되고 희망이 되어준다. 굳이 '탈출'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불안으로부터의 그것'. 알고있는 불안을 버리고 미지의 불안을 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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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소식을 들었다. 어느새 출발선에 나서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느낌. 이번만은 우여곡절없이 순조롭게 지나와주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묘하지. 원하던 결과였음에도 겁이 덜컥 나는 건 왜인지...잘하는 짓인지 아닌지 곱씹는게 무의미하겠지. 원했으므로 시도했고 추진했고 결과를 얻은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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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결정됐다. 기정사실이 됐다. 부모님의 반응은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역시나. 
정말 잘하는 일인가. 과연 행복해지는 일인가. 내겐 어떤 의미인가. 바닥을 경험하고 능력을 키우며 낯선 곳에서 삶을 일구어 낼 수 있는 인간인가. 자기증명의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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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하면서까지'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하기 위해서? 거기는 무엇이 있는데 행복할 수 있다는 걸까? 여기서는 무엇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는 걸까. 이민이라는 것은 정말 불효중의 불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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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을 앞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겉으로야 우리를 걱정하는듯 보이지만 헤어짐을 서운해하기보다 다 각자 자신의 향후 문제에 더 걱정이 많은듯 하다. 우리의 부재로 인하여 자신에게 오는 영향에 대해 재느라 분주한 모습들, 아, 그런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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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가 끝났다. 짐들이 떠나갔다. 어쨌든 하나하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삶은 짐인가. 짐이 삶인가. 있던 짐이 다 사라지면 삶이 잠시 벙찐게 된다. 익숙하던 별것아닌 삶의 행위가 무심코 흘러가지 못하고 탁탁 끊긴다. 본의아닌 알아차림의 연속. 아, 없지, 보냈지. 신문 걸어놓던 식탁의자 등걸이, 무심코 자동차 키 툭 던져놓는 책장 위가 사라졌다! 그것들이 없으면 자연스레 자동적으로 행하던 일상의 흐름이 끊기고 말소리가 울리는 집안엔 생경스러움만 가득찬다. 주인닮아 변변찮은 내 살림살이들이 태평양에 얼마나 떠나니다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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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리따 공항. 이제 transfer를 위해 앉아있다. 떠나온게 맞나. 가는 수밖에 없는거야. 
나의 40여 년, 그곳에서 보냈다면 이후의 40여 년은 저 곳에서 보내기 위하여. 

자유를 꿈꾼다. 자유란 자기의 이유로 걸어가는 거라고 했던가. 
순전히 내 선택에 의해 나의 이유로 향하는 곳, 캐나다. 
참자유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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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모아 펼쳐보니 그것은 이민투쟁이었네. 
이제사 다 필요없고 딱 하나만 거르고 다 버려삐리~ 

하여, 지금, 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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