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키워드에 대뜸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르는 중장년층 한국인이 아마도 열 명중 반은 되지 않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 문화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을 상징할뿐 아니라 인생을 예견하고 암시하는 무슨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그 무엇이다. 이름에 쓰이는 한자가 뜻하는 것도 그렇고 획수의 조화에도 향후 인생이 달려있다는 믿음. 그것도 그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 날짜, 시간까지 고려해 한사람의 운명적인 이름이 탄생된다. 실로 art and science of naming이라 할만하지 않을런지.
길거리에 내걸린 '작명소' 간판이 우리눈엔 이미 익숙하고 가끔 아이에게 스스로 이름을 지어주고자 하는 사람들도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같은 책을 참고로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이름에 부여하는 의미는 가히 신앙에 가까운듯 하다. 살다가 일이 잘 안풀리고 건강이 안좋은 것을 이름탓으로 여겨 개명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은 일이고.
이렇게 긍정암시의 주술적인 의미를 담뿍 담아 지은 이름은 신성시된다. 이름을 빨간 글씨로 쓰면 안되는 금기부터 누군가의 이름을 경망되이 불러서도 욕먹기 쉽다. 심지어 '이름'자체에도 높임말이 있지 않은가. '이름이 뭐에요?' 이랬다가는 막돼먹은 사람되기 딱 알맞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또는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쯤으로. 그런가하면 누군가에게 부모님 이름을 얘기할 때는 '길짜 동짜 쓰십니다' 하는 식으로 말해야 제대로 된 가정교육 인증이 된다.
위의 시를 음미해보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이름을 불러주니 그때 비로소 내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가 되는데, 실은 어쩌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기 전까지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것은 아닐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이나 처음 본 사람의 이름을, 그리고 한번 보고 말 사람의 이름은 알 필요도 알려줄 필요도 없고 따라서 부를 필요도 없는게 아닐까.
실제로 그런 경우 이름을 물어보면, 상대는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하며 살짝 경계태세마저 취하기도 하니까.
한편, 이쪽 사람들(서구문화)은 어떤가. 이름을 별로 아끼지(?) 않고 마구 불러대는 것 같다. 그것도 성을 안붙이고 주로 이름만 부르니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도 어른에게 이름을 부르고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어머님' 대신 이름을 부르고 은행직원도 '고객님' 대신 이름을 부르며, 신입직원이 매니저나 보스에게도 다만 이름을 부를뿐이다.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의 문화는 위아래도 없이 본데없는 '서방무례지국'이어서일까. 캐나다에서 조금 살아보며 든 생각은 바로 이거다. 왜 이름을 부르냐면, 그게 그 사람 이름이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있으니까! 끝.
캐나다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이름표를 다는게 보편적인 것 같다. 직급을 알리는게 아닌 이름을 표시하기 위해. 처음보고 도움을 청할 때 재빨리 가슴팍에 단 이름표를 힐끗 보고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식.
우리네 문화에서는 어떨까. 도심의 큰빌딩에서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온 많은 '대기업' 직원들의 목엔 대개 직원 신분증이 걸려있는데(왜 밥먹으러 나올때도 걸고나와 거리를 활보하는지 이해안가는 문제는 주제에 빗나가므로 생략함) 주로 부서나 직급 표시와 사무실 입실 체크용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분증에 사진이 붙어있고 밑에 이름이 씌어있는데다가 목에 줄을 걸었기 때문에 이름은 횡경막과 배꼽 사이 어디메쯤 위치하게 되는데 굳이 남의 복부께에 시선을 주며 이름을 보라는 건 아닐테니까.
캐나다에서 각종 '범'들이 들락거리는 경찰서에 안가봐서 모르겠는데 캐나다에선 형사들도 명찰을 달았을까 매우 궁금하다. 아주 오래전, 당시 기자일을 처음 시작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출입처인 경찰서에 갔을 때, 외모와 언행이 누구랄것없이 모두가 터프한 그곳에서 누가 형사고 누가 범인인지 한눈에 간파하는 법은 바로 컴퓨터(타자기였던가)라고 했다. 모니터를 마주보고 조서 꾸미고 있는 사람 -대개는 독수리 타법으로-이 바로 형사라는.
그러면 이들이 우리가 하는 것보다는 남의 이름을 쉽고 가볍게 불러대는 이유는 뭘까. 워낙 사람들이 권위적이지 않고 프렌들리해서일까? 특별한 근거는 없이 내가 느낀바로는, 우리는 두루뭉실한 것도 때로는 미덕이고 은연중에 내포하기도 하며,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나'의 습속이라면 이들은 'specific'을 지향하는 습속때문이 아닐까. 심지어 두사람이 마주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간혹 이러는 사람 있지않은가. 뭘 질문하면 '저요?'하고 꼭 반문하는 사람. 이들은 인사말에조차 상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여러사람 있을 때, 이름 안붙여 인사를 건네면 자기한테 하는게 아니라고 여겨 대답을 안하기도 하므로 꼭 '안녕 파덩~'이라고 해야 먼저 인사를 건넨후 시쳇말로 '씹힘'을 면할 수 있다.
앞부분에 일부 인용한김에 마저 음미해볼까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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