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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마담파덩 2018. 8. 24. 09:15


당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로또가 될 때

내가 '꼭 한 사람'이 되어주기로 결심한 사람이 동성애자면 어떻고 직업을 바꾸면 어떻고 

미혼모면 어떻고 번번이 지는 싸움만 하면 어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원해 줘야 마땅하다. 

마도 그렇듯 그도 그런 응원자가 있어야 살 수 있다. 당신이 응원자가 된 순간 당신은 그에게 로또다. 

...

현실세계에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로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의 환한 웃음이, 깊은 포옹이, 맑은 눈물이, 우물같은 깊은 끄덕임 한 번이 심지어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있는 누군가에게 로또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그 지옥은 저만큼 물러선다. 


엄마성 있는 존재 

'화살' -이 시영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먼 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세게가 적요하다 


쏜살같이 내리꽂히는 엄마 새의 속도를 손 꼭 쥐고 응원하다가 

새끼를 낚아채 비상하는 상상도에 혼자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롤러코스터 딸 때처럼

짜릿한데 결국엔 짠해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해요.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듯이요. 생물학적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생명을 지키고 상처를 보듬는 (엄마 아니고) 엄마性 있는 존재가 진짜 엄마죠. 

세상의 모든 엄마성 있는 존재에게, 축복은. 세게가 적요해진다잖아요. 


내 존재와 선택 자체를 부정당할 때 

내가 선택한 자발적 가난이나 주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결혼 등 내가 스스로 교정하지 않기로 선택한 일에 

데해서도 심리적 리액션은 똑같다.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싸가지 없다는 비난을 들어야 할 하등의 이유나 의무가 내겐 없다. 

관계를 끊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면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리액션이다. 그러다 관계가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없다. 

그런 관계라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거나 외려 삶의 질이 나아진다. 새로운 관계는 계속 생긴다. 식수가 없어서 구정물을

마신다고 살아지나. 제대로 된 식수를 구하기 전에 병에 걸려 죽는다.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달라진다. 자연의 이치다. 내 생각, 내 감정도 바뀔 수 있다. 당연하다. 그걸 인정할 수 있으면 관계가 덜 위태로워진다. 

굳은 약속조차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용감하게 인정해야 외려 관계가 탄탄해진다. 흔들리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옳기까지 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자기와의 약속에서도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아무 문제없다. 자기 족쇄에서 스스로를 풀어주면 실제로 상황이 달라진게 없어도 마음은 이전보다 홀가분해진다. 그러니 자기가 스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는 일은 중요하다.

자신이 채운 족쇄에 갇혀 전전긍긍하는 누군가의 고민을 듣다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면 되지'라고 조언하면 얼굴이 놀랄만큼 밝아진다. 상황이 바뀐게 없는데 문제가 풀린듯 개운해하기도 한다. 못할 것도 없는 생각인데 자기 족쇄 때문에 엄두도 못 내본 거다. 

자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수갑 채워놓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많은 경우 지옥은 사라진다.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 

'우리말 사람4' -서정홍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죽으면

사망했다 하고

넉하고 잘 배운 사람들 죽으면

타계했다 

별세했다

운명을 달리했다 하고

높은 사람 죽으면

서거했다

붕어했다

승하했다 한다. 


죽었으면 죽은 거지 

죽었다는 말도 

이렇게 달리 쓴다, 우리는. 


나이 어린 사람이면 죽었다

나이 든 사람이면 돌아가셨다 

이러면 될걸. 


어떤 여자가 그랬는데 자기는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 기준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대. 

정의감 그런 것 때문이 아니고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속을 믿을 수 있다는거지. 

섹시하기도 하다네. 의전이나 매너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그런 기준을 가진 남자가 후지기는 어렵지 않겠어. 

난 그 말 듣고 그 여자가 얼마나 괜찮게 생각되든지. 섹시하기까지 하던걸. 


조율이 필요한 이유 

'성욕'-박용하 

1

수줍음과 난폭함이

늘 양날의 칼처럼 맞대고 있다

평생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며 

귀하다고도 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우리들 우글거리는 모든 악의 원천! 

지상이고 천상인 그대는 

노래없는 얼굴로 나타나

늘 정체 모를 시간과 함께

삶의 의젓한 얼굴을 급습하는구려 


2

말은 통하는데 몸은 안 통한다 

비애다 

말은 안 통하는데 몸은 통한다 

그것도 비애다 

말도 안 통하고 몸도 안 통한다

비애도 그런 비애가 없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신호

역설이지만, 증오의 감정 단계까지 간 이에겐 모드 함께 불행해지자는 그게 정상적인 마음이에요. 

'모두가 공평무사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모두가 눈물겹게 불행해질 때까지,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불행해질 때까지, 

모두가 완전무결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그런 마음 먹는대도 아무 문제없어요. 꼭 그렇게 될 거라고 격려와 지지까지 해주면

더 좋죠.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얘기 못하는게 문제지 지금 내 마음이 그렇게 지옥이라는데 그게 무슨 문제예요. 


모두가 백조일뿐

'보자기의 비유'-김선우


처음엔 보자기 한장이 온전히 내 것으로 왔겠지

자고 먹고 놀고 꿈꾸었지 그러면 되었지

학교에 들어가면서 보자기는 조각나기 시작했지

8등분 16등분 24등분 정신없이 갈라지기 시작했지

어느덧 중년-

갈가리 조각난 보자기를 기우며 사네

벼랑 끝에 자주 찔리며

지금이 없는 과거의 시간을 기우네

미래를 덮지 못하는 처량한 조각보를 기우네


한번 기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네

그러니 청년이여 우리여 

가장 안쪽 심장에 지닌 보자기 하나는

손수건만하더라도 통째로 가질 것

단풍잎만하더라도 온전히 통째일 것


온전한 단풍잎 한장은 광야를 덮을 수 있네


겉으론 멀정해 보이는 사람도 바늘에 찔리며 갈가리 조각난 보자를 기우며 산다는 거잖아. 

'나 혼자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거겠지' 자책하면서. 마음 지옥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우아하게 물 우위에 

떠 있지만 물속에선 쉬지 않고 발질해야 하는 백조와 다르지 않은 듯싶어.

길게 배우고 많이 가졌다고 다르지 않던데. 예외가 없다 할 만큼. 그러니 나만 혼자 힘들게 혹은 위선적으로 물속 발길질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동시에 무지의 소치야. 누구나 그래. 거기까지 알고 나서 '온전하 단풍잎 한장은

광야를 덮을 수 있네'라는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 더없이 후련한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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