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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못하는 남자

내게는 고약하고도 쓸모없는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 하나 있다. 젓가락질 못하는 남자가 싫다고 하는. 아니 다시 말하자. 젓가락질을 자연스럽게 해야 마땅함에도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아 이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젓가락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는데 못하는 남자, 아 그게 맞긴 하겠으나 더 쉽게 가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국남자인데 젓가락질 못하면? 실격이라 이거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편견이고 고집이다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처럼 젓가락질이 안돼서 좀 열등감이 있었다. 정작 부모님은 그걸 보고 야단치지도 않으셨는데 혼자 괜히 그랬다. 그게 어른같은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내 머리속엔 내가 하는 방식 젓가락 두 개가 벌어지지 않고 딱 붙은채 밑에만 벌려서 음식을 집느라 X가 되기 일쑤인 내 ..

글 나부랭이 2025.02.23

한일전 같은 캐나다 대 미국 아이스하키 경기, 모욕당한 자의 설욕

지난 목요일 저녁은 올겨울 춥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캐나다 전역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아이스 하키 경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의 자존심 아이스 하키 경기에 대한 열광은 새로울 것 없는 일인데 그 날은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왜? 요즘 돌아온 트럼프의 과감하고도 무례한 행보와 망발때문에 껄끄러워진 미국과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난 그날 저녁 나이트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내가 투약시간에 약을 실은 카트를 밀고 복도를 오가는 동안 크게 틀어진 티비 중계 소리도 여느때와 다름없는 일상일 뿐이었다. 아이스 하키에 문외한인 나는 그날 어떤 경기가 펼쳐지는지 알바 없었고 누가 이기는지까지 뭐 그닥 큰 관심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힐끗힐끗 보면 몸싸움이 격렬해서 그 하얀 얼음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기..

글 나부랭이 2025.02.23

소설 용산산성: 폐주 윤석열의 졸렬한 싸움[새벽에 문득]

김종구 (언론인)   제19장 : 농성(籠城)궁에서 쫓겨난 폐주(廢主)는 용산산성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수도 한양의 방어 요충지인 한강진(漢江津)이 지척에 있는 요새였다.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망루마다 초병을 세웠다. 폐주가 거처하는 내전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목책을 세우고 가시철조망을 둘렀다. 성 바깥 세상이 요동치고 법의 칼끝이 성벽을 두드렸으나, 그는 높은 담장 안에 몸을 깊게 숨긴 채 나타나지 않았다. 뜻있는 선비들이 일제히 붓을 들어 그를 꾸짖었다. "홀로 높은 담을 쌓고 버틴다 하여도 그 담이 끝내 그대를 보호하지는 못하리라. 성 안에서 버티며 때를 미룬다 한들 법이 닿지 않으리라 여기는가. 그대가 성 안에서 문을 꼭꼭 닫을수록 성 밖 백성들은 더욱 등을 돌릴 뿐이다. 부디 깊이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