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싸인 참 많이 하는 나라

마담파덩 2015. 9. 16. 22:13



언젠가도 말했듯이 캐나다 살이 3년이 다 되어가니 이쯤에서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처음 가졌던 낯선 느낌을 떠올려보는 건데낯선 것이라기 보다는 신선한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인데요처음에 참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던 것들이 조금씩 이게(캐나다式)맞는거 같은게 늘어가는 것그것을 적응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캐나다는 참 싸인(signature) 많이 하는 나라예요그 싸인이 상당히 효력을 가지므로 

절대 함부로 할 일이 아닌데 저는 어쩌다 싸인 종류를 여러 가지 보유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정식 싸인 하나칸이 좁을 때 쓰는 약식 싸인 하나한국에서 카드 사용 때 사용하던 구버전 하나...그러다 얼마 전 체크 발행하면서 싸인을 잘못해서 성가신 일이 생기기도 했지요.  

 

애들 학교에만 보내놔도 신학년이 시작되면 싸인 할 일 참 많습니다현장학습을 보내겠다고도 싸인하고현장학습 갈때 스쿨버스 태워도 좋다고도 싸인하고체육시간에 스포츠 활동 시켜도 된다고 싸인하고 점심을 학교안에서 먹게하겠다고 싸인하고 예방접종을 '허하노라'는 싸인도 해야 하고 학교활동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에 동의하는 싸인도 해야 합니다.   그밖에 사람과 사람이 엮여 뭔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반드시 수차례의 싸인질이 필수인건 특별한 일도 아니죠.

 

그런데 최근어떤 건물이나 장소를 출입할때 방명록에sign-in/ sign-out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저는 권위주의 국가 출신답게 특히 관공서나 공공기관 같은곳에 sign-in/out하는 이유를 '언 놈이냐 무슨 일로 감히 여기 들낙 거리는게냐쯤으로 알고 있었드랬습니다그래서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형식적인 것으로 여겨 대충 안할 때가 많았는데요.

 

그런데 그 이유인즉슨그 건물에 불이 나면 소방관이sign in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아 구조하는데건물에 들어가 있고도 sign in 되어있지 않으면 나를 찾지도 않는다는 뜻이고들어왔다가 볼일 마치고 나가면서 sign out을 하지 않으면 소방관이 있지도 않은 사람을 찾느라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된다는 이유였습니다얼핏 들어보면 별 얘기 아닌듯 하지만 제겐 적잖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요불이 났다하면 각자가 죽기살기로 기를 쓰고 탈출하면 모진 목숨 하나 건지는거고 아니면 허망하게 죽는것일뿐어떤 구조 시스템에 의해 누군가 나를 구조하도록 되어있다는 믿음을 제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습니다

 

'만일'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설계하는 '저들식 '설마'를 앞세워 대범한 '우리식'.  

그 이후로는 방명록에 이름 적으면서 어쩐지 주눅드는 기분으로 '이런 건 왜하나또는 '아무려면 어때'하는 형식적인 sign in이 아니라, '나예요만일의 경우 날 꼭 좀 찾아 구해줘요 네?' 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적곤 합니다

 

꼴랑 3년에 '여기식'을 두고 어느새 이게 맞지않나할때면 제가 봐도 피식 웃음이 납니다그래서합리나 실리와는 거리가 먼 '우리식'의 오류를 접하면 더욱 답답해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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