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캐나다 vs 한국, 있다? 없다? (4)

마담파덩 2016. 12. 13. 15:40


한국엔 있고 캐나다엔 없는 것, 네번째. '진도' 되겠다.  

'진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

진돗개로 유명한 전라남도 진도? 아니면 지진의 세기를 일컫는 말?


진도를 나가다.. 사전에 찾아보니 이건 하나의 교육용어로 취급되고 있다.

;학과의 진행속도나 정도.

교육현장에서 자주 쓰이곤 하는 '진도 나가다'란 말은 사전 정의대로 배움의 과정이나 성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냥 속도다. 예문을 들어볼까? 

'무슨무슨 과목은 진도가 엄청 빨라. (혹은 진도가 늦어)'.

'시험이 낼 모레인데 아직 진도도 다 안나갔어' 등등.


한국에선 '진도를 나가다'라는 말이 왜 그리 자주 쓰여야 할까?

뭘 배웠고 뭘 아직 안배운 시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도를 나가고 안나가고 여부가 자주 거론될 때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광활한 들판에 트랙터가 훑고 지나가는 모양. 사실 그게 말그대로 진도 아닌가. 정해진 교과서의 특정 단원의 첫 부분 학습목표부터 시작해서 끝 페이지 '다시한번 정리해 봅시다'까지 교사가 한번 훑고 지나가면 진도 나간게 되는거다.


그럼 이 진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전제는 무얼까? 바로 시험날짜. 시험까지 '훑지'않은 부분이 많이 남았으면 진도는 빨라지고 그렇지 않으면 천천히 진도를 나가도 된다. 시험 전 진도를 다 나갔으면 '자율학습'을 하거나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조를 기회를 가질수도 있는.(우리는 그런거 좋아했지)


아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시험 전날 수학과목의 한단원의 진도를 통째로 나가는 경우를 목격하기도 했다. 와, 진도가 너무해! 이쯤되면 트랙터가 지나갈틈도 없이 그냥 '진도'를 집어 삼키는 꼴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진도를 마친것으로써 아이들은 그것을 명실공히 '배운'게 되는거다. 

이런 '진도'는 엄마들끼리의 대화에 화제가 되기도 하고 교사에 대한 평가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르치는 일에 임하는 성실성과 책임감. 또는 적어도 효율적 시간안배라도.


캐나다는 어떨까. 현상이 없으니 말이 존재할리 없을 것 같은데... make a progress?

캐나다 교실에서 교사가 진도나가는 일에 관한 의무감 또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을까. 

주마다 각 해당학년에 배워야 할 내용들은 정해져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것들을 정해진 수업일수동안 빠지지 않고 다 다루는 것을 '진도 나간다'라는 말로 표현하진 않을것 같다.


캐나다와 한국이 다른 이유, 서울시 교육청 정책보좌관으로 활동하는 이범씨의 글이나 강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 개개인에게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재량권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는 것.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교사가 자신이 몇학년을 맡게 될지 개학 일주일전에 알게된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교재연구고 뭐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교사에게 교과서 선택권이 없다는 것. 그냥 존재하는 교과서를 '훑고 지나'가는 역할만 하도록 되어있는 구조.


캐나다에 처음 와서 교과서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고 이해가 안될뿐 아니라 마음이 불편했다. 뭐라도 있어야 할게 아니냐고오...  교과서를 사용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지급하거나 구입하도록 하는게 아니라 학교에서 잠시 빌려준다. 그걸 모르고 학교 시작하기 전 준비한답시고 토론토 시내 서점에 가서 한국인 사장님 말만 믿고 몇십만원어치(몇 권 안되는데도 엄청 비싸다)의 텍스트북을 샀다. 그 분은 왜 그러셨을까.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다르다는 걸 이곳에서 더 오래산 그분은 알고 계셨을텐데... 그것도 통째로 '진도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건데...


캐나다에선 교사가 텍스트북이든 뭐든 나름대로 무엇을 가르치는데에 쓸 교육자료를 직접 선택한다. 그런다음 평가도 해당교사가 자기가 가르친 것으로 시험이나 숙제를 내서 하는 걸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못하는걸까. 이범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당국이 규정을 정해놓기를, 담당교사와 관계없이 학교내의 해당학년 모든 클라스의 시험문제가 똑같아야 한다고 한다.  그걸 어기면 학교장부터 시작해 줄줄이 징계를 당한다고. 그러다보니 나름대로 소신껏 이런 저런 아이디어나 시도를 하는 교사가 있다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로부터 시험에도 안나오는 불필요한 과정으로 취급될뿐인거다.


그런 배경으로 인해 족히 몇십년동안 배움이란 모름지기 충실히 '진도 나가'는 일이 스탠다드로 된게 아닐까.  그런데 '진도 나가다'란 말도 진화를 하는가보다. 몇십년 전엔 없던 말로 최근엔 '진도를 뺀다'라는 말도 들었다. 보다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진도 나감. 팍팍 밀고나가는 것도 모자라 앞에서 확 잡아 빼?! '진도를 나가'는 건 공교육의 수세적 본분이고 '진도를 빼는'건 사교육의 공세적인 스킬일까.


한편, 요즘 국민들을 '멘붕 셰뇨리땅'에 빠뜨리신 얼굴 빵빵한 그분이 꿈꾸는 국정교과서가 과연 뜻한바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엉뚱한 의문을 가져본다. 왜냐하면 역사과목에서 근현대사는 기말시험 범위에 잘 포함되지가 않거덩. 그부분은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잠깐 학교다닐 때를 위해 남겨두었다가 선생님이나 애들이나 그냥 하면하고 말면말고 하듯이 형식적으로 훑고지나가는 부분이거덩. 목적한바 특정인물 미화와 세뇌를 깊이있게 하려면, 소위'선진국' 스타일을 도입해야 할 걸. 수업시간에 다큐멘터리도 좀 보여주고 토론도 좀 시키고 글도 좀 써오라카고...그러다 자칫 사고력과 비판능력이 길러져 역작용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좀 감수할 일이고.

 

곧 새 해를 맞이하면서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는 쓰지않는 물건들을 싹 처분하리라 맘 먹었는데 영 진도가 안나가네. 그러게 까페질을 작작 좀 하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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