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돌아보니 그거야말로 '불금'이었네. 불타는 금요일에 딸래미가 나를 꼬드긴건 바로 '방방콘'이었어. 도무지 줄임말같은거 익숙해지지 않는 아둔한 나지만 알아는 듣지않겠어? '방구석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라지. 활동초기부터 했던 뮤직비디오, 콘서트, 팬미팅 장면까지 몰아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랬어.
사실 이번 난데없이 몹쓸 코로나 바이러스 난리가 생겨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건지 가장 속타면서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바로 딸래미거든. 학교 못가서냐고? 에이 그럴리는 없잖아. 이유인즉슨, 이번 여름방학 때 졸업선물로 한국행 티켓을 가지고 있는데다 그 전 5월엔 이곳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 예정된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을 쥐고 있다는거 아니야. 4월 서울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5월은 어떻게 될까 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는중이지. 그런 딸래미와는 달리, 솔직히 내 관심은 오로지 환불여부야. 내심 비행기 티켓은 환불이 안된다는거에 마음이 좀 편치않고 콘서트는 환불이 확실히 될거라는 확신에 별 불만이 없는 그런 상태지. 딸래미앞에선 내색도 못하지만. 왜냐하면 딸래미가 나의 속마음을 알게된다면 우리사이는 틀림없이 '감정적 거리두기'를 하게될게 뻔하잖아?
딸래미가 함께 볼 것을 제안했을때는 내심 황송한것도 있었지. 늘 그렇듯이 제 방에서 콕 박혀서 혼자서 볼 수도 있을텐데 함께 보자고 청하다니 조금은 감동마저 먹은 기분이었지. 그렇게 철야로 이어질줄은 몰랐으니까. 딸래미는 자기가 초창기적부터 '아미'라는데 은근 자부심마저 갖는 아이야. 세상이 다 좋아하는 때에 시류에 편승하듯 되는 팬이랑 다르다는 억지논리지. 세상이 그들을 알아보기 이전, 그니까 서럽고 배고플 시절 함께 해온 -그 멀리서!- 원조 팬은 일편단심이라나.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말이지만 일종의 '조강지팬'이라고나 할까.
딸래미는 작년에도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월드투어때도 다녀왔거든. 그때 심장이 벌렁벌렁하는게 보이도록 흥분했던 기억이 있어. 그들이 나온 무슨 다큐멘터리 영화상영 때도 물론 갔고. 그러다가 이제 대망의 로저스 센터 공연이 불투명해지자 이만저만 낙담이 아니야.
방탄소년단을 향하는 일편단심 민들레의 '아미'에 비해 그 '어미'는 말야, 그냥 one of them 정도였지. 난 원래 아이돌 현상을 곱게 보지않는 사람인데다 그 기획사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이었던 터라... 재능있는 어린 애들 데려다 혹사시키며 장사수단으로 이용해 먹는 일부 기획사들의 행태룰 열라 씹어대던 사람이야. 근데 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런데까지 적용이 될 수 도 있을까?자식이 그렇게 좋다고 목을 매니 나도 그냥 관심이 가고 이쁘게도 보이드라? 그래도 늘 궁금했어. 얼핏 보기엔 그만그만한 인물에 춤에 노래에 그런 보이그룹들 처음이 아니잖아? 근데 뭐가 다른지 말야. 그렇게 세계에서 열광하는 아이돌을 넘어 자기 색깔을 가진 '뮤지션'이 된 힘이 뭔지 궁금하더라고. 그럴 때마다 딸래미는 나름 열심히 설명해 줘. 결국은 한마디로 '남달라'야.
'방방콘'이라길래 '야, 저거 올여름에 아이스크림 이름으로 해서 나오면 히트치겠다 그치?' 하는 객적은 소리를 해도 그때까진 딸래미는 너그러웠어. 어쨌거나 그들의 무대는 문외한인 '어미'가 보기에도 눈과 귀가 즐겁긴 했지. 근데 옆에 있는 '아미'는 말야, 노래가 나올 때마다 '나 저거 진~짜 좋아하거든' 하면 난 그때마다 돌아보며 '뭐 아닌거 있어?' 로 응대했지. '나 저거 반복해서 들으면서 진짜 오열했잖아...' 하면서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 손뼉치다가 훌쩍이다가 하는데, 아유~ 이건 뭐 인생을 함께 하는 팬질이더라고. 뭔 노래마다 제 감정이 실린 사연이 그리 절절한지. 난 이 아이를 낳기만하고 키운건 순전히 방탄소년단이더라니까.
나도 거기까지만 표현했으면 딱 좋았을텐데, 왜 아미밤(bomb)이라 하냐, 이슬람문화권에서도 공연한다면서 bomb은 좀 민감할 수도 있지않냐, 아미 타임의 슬로건을 보고 저런건 누가 쓰는거냐, 따위의 질문을 하면서 울집 '아미'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했어. 결정적이었던 건, 이야기중에 '뭐 나중엔 결국 10대 때의 추억으로 남겠지만' 이라는 대목이었던 거 같아. 결국은 '어미'가 '아미'의 진심을 '그저 한때 스쳐가는 팬질'로 폄하했다는거지.
자기가 사춘기의 정점에서 너무너무 힘들 때 자기를 붙들어준 방탄은 자기 인생에 너무너무 특별한 존재라는데 어머어머 가만보니 얘가 아주 어미를 준엄하게 꾸짖는거더라고.
그래도 나딴엔 사춘기와 갱년기 여성간의 세대의 벽을 허물고 말야, 소통의 장을 열어제쳐 나아가 대화합의 장으로 활용해보려고 잠을 참아가며 함께 날밤을 까고있는 건데 말야, 그런 어미를 어쩜 그리 구박할 수가 있는거야 응? 무대위에선 뉘집 아들의 '헤이 마마'하는 중독성 있는 소절이 나오는구만 울집 딸래미는 제 마마에게 이렇게 고개 쳐들고 들이받아도 되는거냐고오~.
그때부터 내가 단단히 삐져설랑 닥치고 보기만 하자 하고 입 꾹 다물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새벽 6시께에 잠이 들었지뭐야. 밤 11시부터 온 밤을 하얗게 새다가 딸래미한테 쿠사리 먹고 찌그러져 잠든 어미의 모습, 처참하지 않아? 내 참 쪽팔려서리...
그래도 다음날 일어나 잠을 못자 깔그러운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지. 그래도 사춘기의 패악질(?)에 모양 빠지는듯하지만 조용히 잠든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더라고. 그 때 사춘기 못지않은 갱년기가 질풍노도의 추태를 부렸으면...두고두고 더 쪽팔렸지 않았겠냐고. 냉장고 문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여져 있대? 지가 잘못한거 같다고. 에효~ 그냥 호르몬이 시켜서 그런거지 뭐 하고 이해해줘야지 어떡하겠어. 사춘기보담 쬐금 더 너그러운 갱년기가 되어야지 별 수 있겠냐고. 내가 방탄의 무슨 노래중, '상남자'인거 하는 노래중 '족치기전에~'라고 잘못 알아들었다가 아미의 눈흘김을 당한 대목처럼 말야, 갱년기를 못다스려 사춘기랑 자꾸 부딪히다가 '네 마음을 놓치기 전에~' 잘 다독여줘야지 모.
모니터속에서지만 파워풀하고 완성도 높은 그들의 압도적인 무대를 보면서 나도 아쉽긴 했어. 싱그런 5월의 어느날, 저들의 당찬 춤과 노래가 캐나다 하늘아래 펼쳐진다면 차암 좋을텐데... 그곳에서 울집 아미가 맘껏 울고 웃고 환호를 지르면서 행복하면 차암 좋을텐데... 그러면 어미도 차암 흐뭇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