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런 '특수한' 나날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조차 이젠 가물가물하네. 그런데 신문에서 알려주더라?
중국 우한에서 첫 발생한지 100일 되었다고. 뭐든 100일 기념하기 좋아하는 우리 문화지만 이 경우는 좀 예외겠지? 근데 100일이니 이런 바람도 들긴 해. 우리 말에 있잖아, '100날 해봐라 되나...' 처럼 바이러스가 100날씩이나 인간세를 누비며 온 지구 안가는데 없이 우리네 일상에 분탕질을 쳐댔는데 더해야 쓰까? 하는.
여기 캐나다에선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매일 아침 11시에 그가 사는 관저앞에 나와서 코로나 관련 브리핑을 해. 영어와 프랑스어 2개국어로. 얼마전엔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당신네들이 한 대응은 옳았다며 한수 배우고 싶다면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기사를 한국의 신문에서 접했어. 음...그때 기분은 말야, 마치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 사이의 예의바른 인사치레 가운데 낀 며느리의 심정이랄까. 다소곳이 두 손 모은채 두 눈 내리깔고 양가 아버님의 점잖은 대화를 엿듣는 며느리의 모습이 바로 나였숴~ 흐흐흐. 그후로도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의 많은 '시아버지들'로부터 협력 요청 전화를 많이 받는다는 기사를 보았어. 암튼 전혀 시아버지 '삘'이 안나는 캐나다의 젊은 총리가 영어로 하고나서 바로 옹숑숑 꽁숑숑 불어로 전환해 같은 내용을 말하기 시작하면 쩜 간지나는 거 있지? 흐흐흐
난 예나 지금이나 참 말 잘듣는 시민이잖어. 마스크 쓰란 말 좀체 안하는 여기선 지금까지 마스크 안쓰고 지내고 있었고,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난 지금쯤 열심히 썼을거야. stay home하며 손 자주 씻고. 요즘은 정말 '교과서 대로' 씼고 있어. 엄지 손가락 잡고 돌려대며 씻기, 네 손가락 다른 손바닥에 비벼대며 씻기, 양 손가락 깍지끼듯 씻기, 끝으로 헹굴땐 정말 속으로 열을 세기도 한다니까.
근데 저번주까지는 1주일에 1번 정도만 장보러 가라더니 이번주 들어서 바뀌었드라? '가능한 한 최대한 적게' 라고. 요즘 내 인생 모토인 '일상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고 있거든. 날마다 새로운 날을 지향하는 사람들조차 요즘은 그렇지 않겠느냐고. 근데 당장 며칠이 힘들어 죽겠진 않지만 불확실성, 이게 사람 미칠 노릇이잖아. 한마디로, 이 짓을 언제까지... 이거 아니냐고.
가끔 상상해보곤 해. 인류에 크고작은 전쟁들이 많았는데 전쟁이 나서 전혀 낯선 지역으로 피난을 가서 종전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버틴다고 해보자고.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려봐봐. 또, 안네 프랑크도 있어. 숨어서 아예 없는 것처럼 지내는 기간이 상당기간 계속 된다고 생각해보라고. 감옥에 갇혀있는 건 또 어때?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1920년대 있었다던 대공황 시절엔 사람들이 어찌 견디고 그 시기가 지나갔을꼬...
또, 20초 동안 손씻으면서도 생각해봤어. 만일 전 지구적으로 물부족 사태가 심각해졌다면? 수도에서는 커녕 자연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비싼 값이 매겨진 물이 마트에서도 동나서 목마르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신맛나는 과일 이름 대기' 놀이를 주도하며 자가 침 생성을 저녁마다 유도하느라 익살을 떨어야 한다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막으라고 막막 하고... 급기야 공공 캠페인에선 '불필요한 음용과 샤워 자제'를 권하고 결국 서로를 꺼려하게 돼서 지금처럼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인 '거리두기' 가 실행되기에 이른다면?
그런 공상까지 하고나면, 올 한 해 꽃구경 나들이쯤, 놀이공원 할인쯤 퉁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한때 티비에서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드랬었었어. 곱고 연약한, 고귀한 분위기의 연예인들이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거친 삶의 체험을 해보는 그런. 사실 '체험'이란게 전제되면 그건 아무리 험하고 거칠어도 그냥 잠시의 '설정'인 거지만 사람들을 대리만족케 하는 요소가 있어서 인기를 끌었었드랬었었지.
나도 혼자서 극한 삶의 체험 컨셉으로 이 상황을 체험해보려구. 그래도 이 상황은 나은거라며 위안삼기 위해서. 할 수 있는한 최대한 적게 장보러 가볼려고. 나는 원래 곳간 채워놓고 관리하는 부잣집 마나님 스타일도 못되고 대량 구입후 소분한다음 야물딱지게 스티커 붙여 냉동보관후 언제든 척척 음식 해대는 계획파 살림왕도 아니라고. 내 사전에 김치냉장고는 읎다! 가 신조인,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혹은 적어도 소비 트렌드에는 확실히 발 못맞추는 그런 게으른 소비자잖아. 8일 됐는데 작은 냉장고 하나가 점점 환해지는게 보이네그랴. 한번 시도해보려고. 정말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하는 지경까지 장보러 가지 않고 버텨볼려고. 어떻게 되나. 어디서 항복하게 되나. 도저히 안된다고 느끼는 지점, 그게 essential이 아닐까.
현재 가장 재고량이 많은 아이템은 쌀과 미역이야. 알지? 미역은 조금의 양이라도 불려놓으면 마구 밖으로 흘러 넘친다는거? 전망컨대, '이팝에 미역국'을 산후조리하듯 먹고나서 장보러 가게 될 가능성이 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ㅈㄹ하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