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나는 내 뜻대로 살았다.'

마담파덩 2020. 4. 29. 08:12

나는 신문의 신간소개 꼭지나 온라인 서점에서 새로나온 책 '아이쇼핑' 하는걸 즐겨. 하기사 아이쇼핑이 아니면무슨 수가 있겠냐고. 결국 '그림의 떡'이라도 보고 대리 만족에 그치기도 하지만 가끔 지르기도 하지. 배보다 더 큰 배꼽값을 치르면서라도 말이야. 


며칠전엔 벤 바레스라고 하는 성전환자 과학자의 자서전이 눈에 띄었어. 나는 사실 '성 소수자'라고 통칭하는 그들에게 특별한 느낌은 없어. 특별한 편견도 옹호도 없다는 뜻이야. 그냥 그런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 드는 생각이란 '참 고민스럽(러웠)겠다...' 정도. 더불어 그 고민스러움은 당사자들의 몫인데 그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건 없다고 생각하는 정도. 그리고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정도. 인간으로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정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생각하는 정도야. 


벤 바레스도 성별을 바꿀 것이냐 생을 마감할 것이냐 고민끝에 성을 바꾸기로 하고 '바바라'에서 '벤'이 된 이후의 삶을 사는동안 남성으로서 유리한 삶을 몸소 경험했다는거야. 그리고 '편견과 차별에 관한 한 우리 모두 ‘괴물’'이라는 말을 했대. 궁금한건, 트렌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없었을까? 


얼마전 우리사회에 화제가 되었던 일이 떠올랐어. 트렌스젠더 군인에 대해 전역이 강요되고 여자대학 입학이 거부되는 사례. 어떤 분야에서 학업을 하거나 업무를 수행하는 일은 사실 그런게 중요하진 않을텐데. 다른 영역의 문제인데 말야. 벤 바레스가 말한 대로라면 편견과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괴물이라는 뜻인데 우리 사회에선 트렌스젠더를 비롯해서 성소수자들을 '괴물'취급하는거잖아.  


출처. 한겨레 신문 

그런데 이 사람의 자서전 표지에 나온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내 맘에 들어왔어. 바로 이 부분. 


"나는 내 뜻대로 살았다. 

성별을 바꾸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진정 멋진 삶을 살았다." 


우리는 늘 비교를 하려들잖아. 안하려들어도 그냥 하게 되잖아. 요즘은 비교는 불행의 비결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고 머리로는 다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되서 멀쩡하다가도 순간순간 안행복해지지 않느냐고. 삶의 조건이 각자 다 다른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그 조건들에게까지 비교를 하려들면 그건 그냥 처음부터 '노답'이잖아. 나는 왜 부모님이 금수저가 아닐까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부모가 아니라 할아버지까지 그 조건에 끌어들이는 추세라며? 암튼 노답이라니까- 이 사람처럼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냥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 수 없을까 같은 고민으로 스스로 그림자에 갇혀 살기 쉬울텐데도, 생사까지 걸며 치열한 고민끝에 선택하고 그걸 '뜻대로 했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것 봐.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내 인생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나는 내 뜻대로 살았다'고 말이야. 물론 반백년 살면서 어리석고 모자라 저질러진 그 수많은 삑사리들은 어떻하냐고? 뭘 어떻해? 걍 흘려보내는거지. 그리고 뻔뻔하게 말하는 거지. 

수많은 삑사리들로 난 성장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라고. 흐흐 


적어도 나는 내 뜻대로 (오늘 하루를) 살았다...하고 말해보자고. 

일찍 일어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브런치에 글을 하나 쓰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과식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했다. 등등. 그러곤 잠자리에 들면서 한번 씨익 웃는거지. 

나는 진정 멋진 하루를 살았다...하면서 말이야. 

Why not~? 


아, 그런데 난 오늘 내 뜻대로 못한게 하나 있긴 해.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에 아이템들마저 'distancing'을 심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겠어? 참 썰렁하더만. 

그래서 한 열흘만에 장을 보러 갔거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오늘도 두루마리 휴지를 못 샀네. 차마 키친 타월을 대용으론 못 쓸거 같아서 곽티슈를 사들고 왔어. 아 쓰바. 


바이러스도 그러면 좀 좋아. 

나는 온 인간세상을 휩쓸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이젠 그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COVID19, THAT'S ENOUGH, PLEASE GO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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