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부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담파덩 2015. 11. 6. 02:31

우리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고 하는 말이 있다. 이것을 통해 짐작컨대, 우리 장례문화에서 주인공은 망자가 아니라 유족인 셈인가? 또 우리말에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신문 부고를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뿐 아니라 실제 기업의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신문의 부고란 챙기기가 업무중 하나라는 얘기도 들어봤다. 

그럼 한번 들여다볼까. 

 

고인의 이름을 안 알려주고 있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15/2019111502489.html

 

   아들들과 사위들의 이름만 나타나 있음 

 

우리의 부고에 나타나는 등장인물을 꼽아보면 주로 자녀들과 그 배우자다. 망자의 배우자가 표시되는 경우는 왜인지 드물다. 이것은 이들이 부고의 주체가 됨과 동시에 장례의 주최자가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딸이나 며느리는 옵션. 예로부터 여자는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set up 작업에만 참여할 뿐 메인 행사에는 역할이 없는 관습이 반영된 걸까?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가끔 괄호 안에 넣을만한 사회적 지위라는 게 있으면 딸이나 며느리도 기재된다. 가만 들여다보니 우리네 부고의 기능은 여기에 있었다. 각자 괄호 안의 '이해' 관계자들로 하여금 당장 화환 주문해서 보내거나 봉투 들고 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렇다면 이렇게 번듯한 등장인물들이 포진해있는 짧은 알림 속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캐나다에서 어쩌다 누가 보고 놔둔 신문을 들쳐보다가 우리와는 다른 스타일의 부고가 눈에 들어왔다. 

<출처. 캐나다 지역신문 Record>

 

부고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망자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나온다. 등장인물이 우리보다 많은데 주로 배우자, 자녀, 조부모, 손자 손녀, 조카, 사촌, 때로는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등장한다.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   ) 하나가 없이. 거기에다 생전에 뭘 좋아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는 선택사항. 부고가 길든 짧든 주인공은 분명 세상을 떠난 이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있어 결혼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아버지가 공직이든지 무어든 한 '자리' 꿰차고 있을 때 자녀 결혼시켜야 한다는 얘기 말이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 세상을 마감할 때도 정승집 개의 장례처럼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례식이 되어 남보기에 번듯함을 과시하려면 자식 -아들이나 사위-이 현역에 있을 때 할 수 있도록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는건데. 

 

과연 좋은 생의 마무리는 무엇인지 한 사람의 삶이 나름대로 가치롭게 남는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다. 

요즘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도 말이 많은데, 우리는 어찌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전히 존재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자연인이지 못한 채  수많은 (   )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지...

 

 

 

 

 

<사진출처. www.walkermorris.co.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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