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신이 직접 3루타를 친 것처럼 생각한다'. 3루까지 가 있는건 우연이라 치더라도 3루에서 홈으로 들어가 득점을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거다. 3루에 안착만 했다고 경쟁이 끝나는게 아니다. 1루고 가지 못한 사람에겐 부러운 고민이겠으나 3루 주자는 나름의 긴장을 한다. 3루에 있다고 모든 주자가 홈으로 무사히 들어오지는 않는다.
타자가 힘 없는 내야 땅볼이나 멀리 뻗지 않는 외야 플라이를 치면 3루주자는 생사를 걸고 달려야 한다. 슬라이딩을 해야 하고 포수와 충돌하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 상황이 9회 말 투아웃에 벌어진다면 주자가 팀의 승패를 좌우한다. 자신이 대주자로 투입되어 실제 시합에 참여한건 몇 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 날의 주인공은 마지막 결승 득점을 올린 그 선수다.
능력주의의 모슨은 여기서 등장한다. 3루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잊게 하고, 3루에서 홈까지 들어오는 능력만이 주목받는다. 멋진 슬라이등을 하느라 더러워진 유니폼이 노력의 증거가 되면서, 전체 판에 흐르고 있는 불평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
3루까지 남들보다 안정적으로 간 사람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 3루부터의 여정이 쉬웠다는 것도 아니다.
노력끝에 홈으로 들어온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3루에서 시작했기에 더 '유리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3루까지 가다가 아웃당안 아무개와 출전도 못해 유니폼이 깨끗한 누구를 보고 '노력부족'이라고 비난할 이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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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의과대학과 병원 연구실에는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한 줄을 위해 인턴셉에 지원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고 하니, 놀랍다. 고교과정을 성실히 수행했는지를 묻는게 공정한 입시일텐데 그런 고려없이 무작정 어마어마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경험에 접근할 기회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다는거다. 인턴으로서 연구를 보조하는 것보다 인턴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훨씬 어렵다.
정말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돈만 있지 않다. 높은 지위에서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총동원하여 좋은 결과를 도출한다. 사회적으로 맺은 인연을 마치 돈처럼 사용하는 셈인데, 밤낮없이 부모는 돈 벌고 자녀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는 가정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다.
'뛰는 놈 위해 나는 놈이 있다' 라는 사실은 세상 이치지만, 너무 높게 날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마주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조국사태 당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가 몇 차례 있었다. 언론은 대학생들이 공정에 분노했다면서 보도하기 바빴지만, 이들 대학을 제외한 다른 학교 학생들은 별로 동참하지 않았다. 그 청년들의 눈에는 이른바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 다니는 학생 역시 '그들만의 리그'를 충실하게 살아온 이들로 비춰졌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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