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부랭이

사는 일 죽는 일

마담파덩 2016. 1. 15. 00:17


해 바뀌고 유명인들의 죽음 소식이 들려온다. 며칠 전 음악하는 사람 데이빗 보위, 그리고 배우 알런 릭암. 

누구나 죽는다... 는 당연한 진리지만 평범하지 않은 재주를 가진 이들에게서 확인하면 다른 느낌이 들곤한다. 

아 진짜 누구나... 하는. 

인생이란, 사는 동안 사는거, 그분이 오시기 전. 나의 인생에 관한 건조한 정의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떠나다. 숨을 거두다. 눈을 감다. 저승에 가다, 삶의 종지부... 등등 표현은 참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연말, 내 삶에서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했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뭐 이런 경험이 아닌.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아눕히고 하다가 느끼게 되는 체온을 기억하는데 죽음이 선언된 환자-더이상 환자가 아닌- 의 몸은 

그냥, 사물이라 볼 수는 없고 the body. 순환이 멈춰버린 존재. 나간 호흡이 돌아오지 않는게 죽음이라고 했던가. 

죽음을 앞둔 사람의 호흡은 편안할 수가 없는데 그 힘겹던 호흡을 놔버린 상태, 그게 죽음같단는 생각이 들었다. 

시신은 티비나 영화에서 보던 혈색없이 창백한 상태의 잠든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정말 이 모습으로는 그냥 생을 끝낼 수밖에는 없겠다 

싶을만큼 약해진 상태로 인간은 삶을 끝내는 것 같다.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없는 완전 정지 상태. 생명체란 어쩌면 생명거죽속에 숨이 통하고 따뜻한 피가 통하는 물건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살아있는 것이게 만드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여성 노인의 몸을 내려보며 언제인가는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놓는 엄청난 일을 한 몸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작아지고 약해진 몸. 

불교에서 말하는 '몸을 버린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몸을 버리면 무엇 남는것은 있는건가. 

몰핀을 맞으며 마지막 며칠을 보낸 것으로 알고있는데 부고엔 'peacefully'라고 나오더군. 죽음이란 조용히 아무런 과정없이 그냥 정지만도 힘든 일이 아닐까. 그래서 죽음도 그저 삶이 사라지는게 아닌 '죽는 일'을 해야 죽어지는게 아닐까.  

주검을 대하는게 어릴 때 기억만큼 무섭지 않은 건 내가 성숙했다는 증거일까. 그렇긴 해도 방문을 닫은 상태에서 시신의 손톱을 깍고 있으려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더는 자라지 않을 손톱을 자른다는 것. 더는 생명이 깃든 존재가 아니지만 아무렇게나의 모습이 아니도록 정돈해 주는 배려와 존중이 매우 진지하게 느껴져서 신중함을 취했었다. 애씀이 끝난 한 생애에 경의를 표하며. 

내가 난생 처음 아주 가까이 체험한 죽음에 이렇게나 의연하단 말이야? 스스로 놀라워하는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의 비트가 강하게 느껴지며 손이 떨리는 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한 생명의 마침을 보고 나는 바로 새 해를 맞이했다. 내가 아직 사는 일을 계속 하도록 허락된 나날들인 오늘, 생명거죽속에 적어도 분노나 욕심 따위를 담고있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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