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작은 아이가 꼬맹이었을 때의 일이다. 정돈 안된 책장 언저리에서 책 한권을 빼들고 앉아 혼자 책 표지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며 무어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역시... 장미란은..." 우리집에 장미란과 관계있을만한 책이 없는것 같은데 뭘 보고 장미란을 얘기하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이어서 말하기를 "장미란은 역시...힘이 세니까...그렇구나..." 장미란이 힘이 센데 뭐가 어쨌다는 걸까 하고 가까이 가서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그런다. "장미란으은 힘이 세니까아 서점에까지이 책으을 옮겨다줄 수가 있는거지이..."
푸하하하~ 역도선수 장미란이 연탄배달 봉사활동하는 이야기는 기사에서 접한것 같은데 꼬맹이가 굳게 믿어버린 장미란 책 옮기는 이야기에 그 자리에서 폭소를 터뜨렸던 일화. 그 이후로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 사이에 인기있는 앤서니 브라운 책이 내겐 저자보다도 '옮긴이'때문에 특별해졌었다.
책도 아무나 옮기는(not only moving but also translating) 일이 아닐진대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을 싸악 거둬 이역만리로 옮겨오는 문제,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만저만한 저지름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우리의 삶이란 갖가지 많은 옮김을 겪으면서 살아가기는 한다. 스스로 옮기거나 타의에 의해 옮겨짐을 당하거나, 즉 끊임없는 변화의 동인이 아닐까. 공간과 시간의 옮김, 그에 따른 형상의 옮김, 존재의 옮김, 상황의 옮김, 처지의 옮김,.. 정확히 말하자면 '옮겨감'인데, 이민은 강제이주가 아니라면 정말 '옮김'이 되는 사안이 아닌가. 그것의 실패 또는 성공의 요인이 뭔지 조건이 뭔지 또는 그 정의가 뭔지조차 모르겠다. 다만 옮김을 감행한 이후 반드시 따라야 할것은 생각의 옮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뭐만하면 튀어나오던 말이지 않았나 기억하는데, 바로 패러다임 쉬프트. 유형의 것이나 무형의 것이나 좋은 거 참 많은 대한민국에서 그게 잘 안돼 안좋은거 여전하고 늘 반복되고 그러질 않나. 그러면 이민자는 패러다임 쉬프트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찾아댄다면 그건 좀 곤란하다. 따로 요약정리본이 있을리 없기 때문에. 꼭 이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란게 '정보공유'로 커버 안되는 부분이 상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