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론조사마다 70 퍼센트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이 자랑스럽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 나라의 자본주의적 성공이 자랑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자본주의적 성공이 자랑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기에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조직을 물으면 많은 이들이 반노동자적 재벌인 현대와 삼성을 꼽는다. 대한민국에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주주보다 그 기업과 하도급 업체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십 배 더 많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은 현실보다는 지배층이 주입하는 이념과 스스로 실감할 수 있는 약간의 물질적 '당근'등에 의해 형성된다.
********
대한민국 인구의 90퍼센트는 중하급 월급쟁이이거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세한 업자들이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각자 그 생존을 도모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 '각자가 생존을 도모한다'는 말은 우리의 국시 아닌 국시다.
************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망언이야 일본 우파의 장기이지만, '남성의 성욕 해소를 위해서는 여성이 마땅히 동원되어야 한다'는 남근 지상주의자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은 한국의 수많은 보수적 남성들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
경제 기적, 민주화, 한류까지 이 찬란한 성적표를 가지고도 왜 대한민국은 어떠한 힐링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불행에 시달릴까?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사람은 어릴 때부터 획일적이고 군대식의 훈련을 통해 형성된 자아의 형태와 욕망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치명적 에러가 있다. 이 자아의 에러는 결국 인간을 그 내면에서부터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이것은 바로 타자들과 경쟁적 비교를 하게 만든다.
*************
우리 의식에 평등이라는 것은 전무하고 모든 것을 순, 즉 서열로 본다. 성적순부터 시작해서 완력, 성격의 외향성, 강함의 순, 출신학교나 대학평가 순, 부모의 연봉순, 아파트 평수순, 영어 실력순, 유학 국가의 권위순, 외모순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서열 천지다. 북한의 정치 문화가 수령 위주인 것처럼 한국의 생활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한 위계 서열적 모멸과 차별이 핵심이다.
*************
일제 강점기 위안부는 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기 보다는 조선인 모집책에 의한 취업 사기로 인신매매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노동환경이 얼마나 쾌적한가, 휴식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쉴 때는 음악이나 독서 등을 즐기면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남을 위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직장 내 인간관계는 얼마나 평등하고 서로 배려하는지가 핵심적인 문제다.
*******************
인간의 삶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가장 기본적 층위는 생물적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이 기본적 생존마저도 노동자
에게는 거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원하는 만큼 먹지도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도 얼마간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같은 준주변부 국가에서는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또 다른 층위는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연애도 할만큼 해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위대한 토건 공화국에서는 이런 것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대다수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애고 뭐고 다 때려치우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이며, 아버지들은 아이들 한번 보는 것도 힘들만큼 늦게 귀가하고 노인 빈곤율은 40퍼센트에 달한다.
마지막 층위는 관계나 창조적 노동이나 어떤 애타적 실천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수이자 가장 깊은 의미일 것이다. 나와 마음이 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을 친구를 사귀거나, 이름 모를 타인을 위해 봉사하거나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말과 글, 그림, 음악을 남길 수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홀가분하지 않을까?
**********************
자본주의 세계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탈인간화'다. 이 사회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구성원들을 항시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로 몰아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민중에게 툭 하면 곤봉 세례를 퍼부어야 하는 전경이나 의경이 처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그런 일은 심신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대에서는 살인적인 구타 풍토를 방치하거나 조장함으로써 그들을 항시 공포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보다 더 철저하고 악질적인 탈인간화 현장은 바로 학교다. 군대에 끌려가거나 스포츠계와 연예계에 몸과 마음을 파는 것은 적어도 10대 중반 정도가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그러니 비인간적인 세계에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하거나 적당히 피해가면서 나름의 생존 기술을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유치원부터 경쟁 교육에 내몰리는 아이들 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ㅂ모를 아직 우주 전체로 아는나이에 아이들은 바로 그 부모의 강요로 영어를 외우고, 친구들을 경쟁자로 생각해야 한다.
*****************
타자들을 그저 따르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이는 온전한 의미의 개인은 아닐 것이다. 개인은 심성적인 자립에서부터 시작된다.
**********************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한 번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나중에 과거의 허송세월을 후회하지 않도록, 비겁하고 좀스러운 과거에 대한 수치심이 마음을 불태우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죽으면서 내 모든 생명과 정력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 인류 해방 투쟁에 바쳤다'고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파웰 코르차긴)
****************
혁명이란 무엇인가? 거시적 의미의 혁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나 개인이 고통을 생산하고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는 것도 벌써 혁명적 행위에 준한다. 약자는 툭 하면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반면 관리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잘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군대에 입대하기를 거부하는 것, 착취 체제에서 상위를 점하는 sky대학에 입학하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입시 공부와 관련한 주변의 강요를 거부하는 것, 대학의 기업화에 맞서 자진 퇴학하는 것,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행동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굳이 엄청난 압력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히 남들을 자신만큼 챙기면서 사는 것도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작은 반란'이다.
'책갈피 넷갈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훈 from '채널예스' (0) | 2021.08.25 |
---|---|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0) | 2020.09.29 |
휴거 빌거 이백충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0) | 2019.12.30 |
장강명의 책한번 써봅시다 중에서 (0) | 2019.12.09 |
내 마음속 후진국 (0) | 2019.08.06 |